포천 영중면 성동5리는 90여 가구 28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농촌마을로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시대의 생활 유적지로 유명하다.
성동5리 마을 유적 발굴 결과 주거지 9기, 소형 유구(遺構) 45기, 구상 유구(溝狀遺構) 1기 등이 확인 조사됐다. 출토 유물과 유구의 중복 관계를 바탕으로 신석기 시대 단계, 원삼국 시대 단계, 한성 백제시대 단계, 신라시대 단계, 조선시대 단계 등 대체로 5단계의 유구 점유(占有)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중에서 3단계인 한성 백제시대와 4단계인 신라시대의 주거지 및 소형 유구가 중심을 이루는 마을 유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마을 유적은 1998년 5월 경기도 박물관에서 영평천(永平川) 유역에 대한 정밀 지표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됐다. 지표조사 당시에 확인한 면적은 약 181,818㎡의 대규모 유적이다.
채집된 유물의 성격과 지역의 지형으로 미루어 한성 백제에서 신라에 이르는 복합 마을 유적일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유적 내의 하천 하류 쪽에서는 주로 백제 토기가 채집됐고, 상류 쪽에서는 신라 토기가 발견되어 시기에 따른 마을의 이동이 추정된다.
유적 내에는 토사 채취로 노출된 유구의 흔적이 여러 곳에서 관찰됐으며. 이 중에서도 특히 성동5리 644-1번지와 644-2번지 일대의 약 1,652㎡는 유적이 조성된 구지 표면 아래에까지 흙이 깎여 다수의 주거지(住居址) 및 용도 불명의 소형 유구가 지표상에 노출됐다.
이에 따라 경기도 박물관에서는 멸실 위기에 처해 있는 문화 유적을 보호하고 경기 북부 지역의 삼국시대 문화 양상을 파악하기 위한 기초자료 확보를 목적으로 1998년에 긴급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포천 신읍동에서 국도 43호선을 타고 북쪽으로 14㎞ 정도 가면 영중면의 38휴게소를 지나서 성동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이동면 방향으로 우회전해 800m 정도 직진하면 도로 오른쪽으로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이 비포장도로는 영평천을 가로지르는 백교(白橋)와 연결되는데, 성동5리 마을 유적은 백교를 건너 5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43번 국도 바로 옆에 붙어 있어 자동차 소음으로 정신이 없는 경로당에서 이용대(76) 노인회장, 박관서(76) 총무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성동5리 경로당 회원은 32명(남12, 여20)으로 농사철 이용은 뜸한 편이나 농한기 이용은 무척 활발해 매일 개방해야 할 정도로 이용률이 높다.
경로당은 50㎡ 크기로 1994년도에 건립돼 노후된 편이고 협소해 보인다. 최근에는 10㎡ 규모의 주방을 증축했으나 이 또한 격에 어울리지 않는 듯 하다.
지금도 농사일을 짓고 있다는 이용재 노인회장은 “경로당이 어르신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낡고 노후돼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소음에 노출돼 쉼터로서 기능 발휘가 안된다”며 “다른 곳으로 옮겨 신축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낡고 비좁은 데다가 전기설비도 심야 전기를 이용해 동절기 난방비용이 약 50만원이 지출돼 운영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등 어려움이 많아 보인다.
게다가 체력단련기구도 전혀 없으며 상수도 설비가 없어 지하수를 음용수나 식수로 사용 하는 등 여느 경로당과는 달리 어려움이 많다고 곁에 있던 박한서 총무가 거든다.
어르신들은 매월 2회 정도 마을 대청소에 나선다. 농촌에 흔히 나뒹구는 비닐, 휴지조각 등 쓰레기 청소와 재활용품 분리수거해 수집소에 모아 놓는다.
성동 5리(박흥렬 이장)에서는 정월 보름날 떡, 떡국, 과일, 술 등 음식을 준비해 윷놀이와 경로잔치가 어우러져 한바탕 요란하다. 이때를 틈타 어르신들과 소통도 하고 덕담도 듣고 풍년 농사를 기약한다.
부족함이 없이 평온하고 풍족한 어르신들의 후한 인심이 물씬 풍기는 마을 모습에 가슴 뿌듯함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