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상골은 이동교1리 마을이다. 이곳에는 800세대 주민 3천여명 가량이 살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26평 크기의 2층 건물에 1층에는 경로당, 2층에는 마을회관으로 각각 쓰고 있다.
마을 노인회 회원은 52명(남15·여37), 경로당을 이용하는 분들은 15~20명 정도로 비교적 많은 어르신들이 매일 다녀가시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는 심연옥 노인회장, 유영희 부회장, 이상란 총무, 이철우 이장이 참석해 경로당과 마을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경로당 전경 (1층 경로당, 2층 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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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부터 노인회를 이끌게 된 심연옥(75·여) 3대 노인회장의 경로당 이야기.
[경로당의 시작은 언제부터 인가요?] 원래 이 건물은 1961년도에 세워져 마을회관으로 사용돼 왔습니다. 회관이 세워진 토지는 아주 오래전 작고하신 동네 어르신이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을 1992년에 통일대 한전철탑이 들어오면서 마을 지원기금이 생겨 구입을 했습니다.
이 때 주민들은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지을까 하다 워낙에 튼튼한 자연석으로 지어진 건물이니 외부에 벽돌로 쌓아 증축하는 것이 낫겠다는 주민들의 의견으로 2층으로 증축해서 지금껏 이용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곳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6~70년대 때 지금의 마을회관 자리에서 국회의원 선거 투표장소로 쓰인 걸 보면 포천의 중심이고 아주 잘 살았던 동네 중 하나였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곳 마을이 용상골로 불리는데 유래는 ?] 용상골은 옛날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한양으로 내려가던 중 잠을 청했다 해서 용상골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또 이곳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부인터 사거리가 나오는데 거기는 이성계 부인이 머물렀다 해서 부인터라고 불렸다네요.
[경로당의 운영은 ?] 우리 경로당은 특징이 하나 있어요. 일 년 내내 점심이 제공됩니다. 이곳을 이용하는 어르신은 보통 매일 15명 이상 다녀가지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꾸준합니다. 당번제를 도입해서 식사를 하는데 당번을 맡은 사람은 더 일찍 나와 식사 준비를 합니다.
어르신들이 오전 10시30분이면 경로당에 나와 저녁 6시정도에 다들 집으로 들어가지요. 예산이 부족해 잘 해 드리지 못하는데 각자 부식을 싸들고 오셔서 아무런 불평 없이 잘 따라주시니 고맙기만 할 뿐입니다. 더 잘 해드리지 못해 늘 미안하지요.
최근에 한가지 아쉬운 점은 마을 행사 때 찬조가 거의 없어 행사를 치룰려면 어르신들 호주머니에서 각자 거출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그전에는 동네 공장에서 후원도 많이 들어오곤 했는데 이제는 경기불황이다 보니 거의 없네요. 지난 해 회원들이 외부 나들이를 다녀오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심연옥 노인회장은 인터뷰에서 회원들에게 더 잘해드리지 못해 마음 한 구석이 늘 미안하다는 심경을 밝혔다.
곁에 같이 앉아 있던 유영희 부회장, 이상란 총무는 심연옥 회장에 대해 “심연옥 회장님 같은 분이 없어요, 늘 앞장서서 일을 손수하시는 타입이죠. 자상하시고 똑 부러지시고 회계관리 장부도 늘 꼼꼼히 챙기셔서 동네 어르신들 모두가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라며 치켜세웠다.
다음은 이철우(45) 이장과의 일문일답 [이동교1리 마을 분위기는 어떠한가요?]
제가 어렸을 적에는 젊은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어요. 마을 대청소 하는 날엔 어르신들만 참석하셔서 동네 구석구석 쓰레기를 깨끗이 청소하시고 계십니다. 한분도 빠짐없이 정성껏 치우시는 어르신들 각자의 모습은 어느 동네보다 단합이 잘 돼있다고 자부합니다.
최근에는 타지에서 몰려든 외지인들이 많이 유입돼 빌라 건물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외국 이주민 사원도 생겨나 주말이면 외국인의 왕래가 번잡한 풍경도 이어지는 마을이 됐습니다. 마을 입구 도로가 좁아 토지 소유주인 외지 사람들의 협조를 구하고 있지만 뜻대로 잘 되지 못해 안타깝기도 합니다. 바라는 사항은 마을엔 공장이 많이 있는데 마을 행사 때 어르신들을 위해 많은 관심을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