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19일 법무부의 청구를 받아들여 통합진보당을 해산했다. 통진당 소속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 5명의 의원직도 모두 박탈했다.
우리나라 헌정사상 헌재 결정으로 정당이 해산된 것은 이번 처음이다.
박한철 헌재소장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통진당 정당해산심판 마지막 재판에 나와 “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고 주문을 낭독했다.
김이수 재판관만 해산에 반대했고, 나머지 재판관 8명은 모두 해산에 찬성했다.
박 소장은 “통진당이 전민항쟁과 저항권 행사 등 폭력에 의해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려 했다”며 “이는 목적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박 소장은 “북한과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 비춰볼 때 추상적 위험에 그친다고 볼 수 없다”며 “실질적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소장은 “정당 해산의 취지를 실효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소속 국회의원의 국민 대표성은 부득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작년 11월 5일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이 헌법에 반한다며 정당활동금지 가처분과 함께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했다. 법무부와 통진당은 지난달 25일까지 18차례에 걸친 공개변론을 거치며 치열한 법리공방을 벌여왔다.
그동안 법무부는 2천907건, 통진당은 908건의 서면 증거를 각각 제출했다. 이 사건 각종 기록은 A4 용지로 약 17만쪽에 달했다.
통진당 등록말소·재산몰수·대체정당 금지·의원직 박탈
통합진보당이 19일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창당 3년 만에 해산됐다. 전신인 민주노동당 창당부터는 14년 만이다.
정당 해산은 헌법이 보장한 정당에 대한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잔여 재산이 추징되고 대체 정당 창당이 금지되면서 사실상 '공중분해'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 결정도 치명적이다.
통진당 해산을 명한 것은 헌법재판소지만, 이를 집행하는 것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다. 선관위는 헌재로부터 해산 결정을 통지받는 대로 통진당의 정당 등록을 말소, 공고하게 된다. 정당 해산은 정당의 조직, 구성원 간의 관계 등 정당을 형성하는 전부를 해체한다는 의미다.
우선 통진당의 잔여재산은 국고에 귀속된다. 당비, 후원금, 기탁금, 국가보조금 등 각종 정치자금이 포함된다. 다만 해산 이전에 지급된 국가보조금까지 추징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재산을 빼앗는 것은 물적 기반을 상실시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조치다. 다만 해산에 대비해 당 재산을 사유 재산으로 전환한 경우 이를 몰수할 수 있는지에 관해선 학설이 엇갈린다.
통진당은 또 기존 강령과 같은 것으로 대체 정당을 창당하지 못한다. 한번 해산되면 '통합진보당'이라는 당명도 다시 쓸 수 없다. 선관위에 등록되지 않은 대체 조직을 만들 수 있을 뿐이다.
향후 선관위가 통진당의 대체 정당 등록을 거부할 경우 통진당은 정당법 40조의 관련 조항이 헌법상 정당 설립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
이밖에 통진당은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도 박탈당했다. 통진당 소속 현직 의원은 5명이다. 김미희, 오병윤, 이상규 의원은 지역구 의원이고 김재연, 이석기 의원은 비례대표 의원이다. 헌재는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이 모두 의원직을 상실하도록 결정했다.
통진당 소속 의원들이 차기 총선에서 다시 출마할 수 있는지에 관해선 명시적 규정이 없다. 외국 사례를 보면, 독일 연방선거법 46조 4항은 의원직이 상실된 사람의 출마를 금지했다.
이정희 대표 “박근혜 정권이 독재국가로 전락시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나온 데 대해 이정희 당 대표는 “1987년 6월 항쟁의 산물인 헌법재판소가 허구와 상상을 동원한 결정으로 스스로 전체주의의 빗장을 열었다”며 “그러나 저희의 마음 속에 키워 온 진보 정치의 꿈까지 해산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선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민주주의가 송두리째 무너졌다. 박근혜 정권이 대한민국을 독재국가로 전락시켰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오늘 이후 자주·민주·평등·평화·통일 강령도, 노동자·농민·민중의 정치도 금지되고 말았다”며 “말할 자유, 모일 자유를 송두리째 부정 당한 암흑의 시간이 다시 시작되고 말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어 “국민 여러분 죄송하다.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임무를 다 하지 못했다. 오늘 저는 패배했다. 역사의 후퇴를 막지 못한 저에게 책임을 물어달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 정부가 자주·민주·통일의 강령을 금지시켰지만 갈라져 아픈 한반도에 대한 사랑마저 금지시킬 수는 없다. 이 꿈과 사랑을 없앨 수 없기에 어떤 정권도 진보 정치를 막을 수 없고 그 누구도 진보 정치를 포기할 수 없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짓누를수록 더 넓게 퍼져나간다는 역사의 진리를 잊지 말아달라. 진보 정치인인 저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믿는다”고 말했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