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는 ‘마들’에서 가끔 시낭송회가 열린다. 하루는 원로시인 황금찬 선생께서 나를 보시더니 반갑게 인사를 하시는 말씀이 나를 기쁘게 했다. “요즘 LA에 사는 애인으로부터 사랑의 전화가 자주 오지?” 황 선생께서 나의 수필 ‘미국에서 온 애인의 전화’란 글을 읽으신 모양이다. “그럼요. 매달 사랑한단 말의 안부전화가 오지요.”
아직도 처녀의 몸으로 버클리대에서 교회음악을 전공하고 교회 순회봉사를 하면서 노모를 봉양(奉養)하는 이현덕 양과의 사제지간(師弟之間)의 정을 그린 수필 한 편 때문에 가끔 하는 전화의 내용을 바탕으로 쓴 글이 황 선생의 심금(心琴)을 울린 모양이다.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서군입니다.” 재경 포천시민회 연례 만찬석상에서 내게 와 안기면서 인사하는 서 군은 시청 근무 행정학박사로 박사학위 수여소식을 내게 전하기 위해 시민회에 나왔다고 했다. 독학으로 공부하여 한국지적학회와 지적공무원의 수장이 되어 매년 시 공무원을 대표하여 사직공원 정례제향에 옛 관복을 입고 참석하고 논문 ‘통일한국의 토지 소유권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또 조군을 만났다. 재학시 마라톤 우승의 영광을 안았을 때, 자기를 안아 격려하고 기뻐했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했다. “아, 장하다. 너는 마라톤 우승의 장한 모습으로 받은 용기로 반드시 성공할거야...” 조 군은 큰 성공은 아니라고 하지만 경찰간부이자 모범경찰로 봉공(奉公)의 임무를 정년까지 잘 마치고 맛난 포도농장을 경영하며 행복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올해 초, 내가 가르친 제자 12명이 서해바다 여행을 했는데 삼성계열의 우수기업 임원인 이 군의 초대로 군산항과 바다낚시도 하고 중국 산동성의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는 충남 해변에서 40년 전 함께 부르던 모교 교가를 함께 소리 높여 불렀다.
“선생님, 저 사람이 저를 보고 어느 장관님을 모시고 왔느냐고 물어봐요”, “예끼, 이 사람 나 같이 팔순의 서리 내린 머리 흰머리 장관이 어디 있단 말인가?”
50이 넘은 중노년의 제자들이 나에게 안기며 ‘추운 날에는 창가에 앉아 보드카 한잔을...’ 러시아산 보드카를 마시면서 푸슈킨의 건배사를 외쳤다.
‘나보다 더 행복한 교육자, 또 있을 것인가?’ ‘충성스런 군인이 되어라’라는 ‘광복절훈화’를 듣고 감동을 받아 평생을 직업군인으로 육군 제25사단 원사가 된 배 군, 고급공무원인 고 군 등 12명의 제자들은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온 종일 나이를 잊고 재롱(?)을 떨었던 하루였다. 누가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없고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없다고 하였던가?’ 내 제자들은 그 옛날 내게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던 학창시절이 그립다고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