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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 칼럼] 맹자를 배워야 정치가 바로 선다


이희용 기자 / heeyeong1@hanmail.net입력 : 2013년 12월 09일
↑↑ 이희용 칼럼니스트, 포천신문 자문위원
ⓒ (주)포천신문사
중국 역사에서 우리가 자주 접하는 ‘춘추시대(春秋時代)’는 공자가 지은 역사서 『춘추(春秋)』에서 근거한 말로 기원전 770년에서 기원전 403년 사이의 시기를 일컫는 말이고, ‘전국시대(戰國時代)’는 전한(前漢) 때의 유향(劉向)이 정리한 역사서 전국책(戰國策)이라는 기록에서 근거한 말로, 중국 역사상 가장 번성하고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두 시대를 합하여 우리는 ‘춘추전국시대’라고 한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차이점은 봉건제도의 유지 여부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주나라가 낙양으로 동천한 후 에는 대체로 제후들이 왕권을 중시하지 않았고, 천자도 그 실권이 없어진 상태였다. 특히 춘추 초기에는 그나마 막강한 힘을 행사했던 춘추오패에 의해 주왕실의 왕권이 유지되었으나, 춘추 중기 이후가 되면 제후의 정권을 탈취하는 대부가 나타나게 되어 이들이 국가의 운명을 흔드는 권력자가 되었다.

전국시대가 되면 봉건제도는 무너지고 국가형태도 성읍국가의 형대로 변하게 되고, 현과 성단위로 영역을 지배하기도 했지만, 그 후 성읍국가가 붕괴되고 영토국가가 출현하여 춘추시대가 대부들이 집정하던 시대였다면, 전국시대는 군주가 직접 권력을 행사하며 통일을 향해 전쟁을 계속한 군주국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전국시대의 사회적 상황은 제후국들 간에 전쟁과 힘에 의한 정권교체로 요약할 수 있는데, 전국초기에 들어서면서 각국은 앞을 다투어 부국강병을 위한 변혁정책을 시작했고, 군주들은 하나같이 봉건과 정전제를 반대하고 공포법(公布法)을 옹호하며 인재나 사상가를 등용하게 된다.

정전제를 기본으로 하는 봉건 통치제도는 사전제를 토대로 하는 군국통치제와 충돌을 하게 되고, 이런 충돌로 각국은 국가형태 뿐만 아니라 전쟁방식과 규모가 대형화되어 힘이 커진 제후는 공실의 지위를 찬탈하기에 이른다.

그 후 영토 분쟁이 일어나고 군주들은 자국 내에서 분봉을 금지하고 중앙집권화를 추구하게 된다. 그래서 군주의 지위는 높아지고 귀족계급은 몰락하게 되며, 전국 중기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급변하여 전국칠웅의 전쟁이 계속되니, 군주들은 부국강병에만 힘을 쏟게 되어 ‘인의도덕’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는 나라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되어 버린다.

그래서 춘추시대는 도구와 농업생산기술이 발전하여 생산량이 증대되고 경제 발전이 계속되었으나 국력은 쇠퇴하게 되었고, 토지를 친척이나 고신 그리고 농민에게도 나눠주고 경작하게 되지만, 전국시대가 되면 농민들은 작은 자기의 농토를 소유하게 되어 경제적인 힘을 가지게 되고, 농업의 발전은 수공업의 발전으로 이어져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고 상업을 발전시키게 되고 상인계층을 형성하게 되어 계급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맹자는 바로 이런 시기에 공자가 그랬듯이 천하를 돌아다니며 인정(仁政)을 바탕으로 한 왕도정치를 주장했고 공자와 유가의 이상을 옹호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유랑자가 증가하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백성들이 안정되게 농사를 지을 주 있도록 하는 것이 통치자의 우선적 임무라고 생각하여, 위정자의 윤리 도덕적으로 안정된 사회가 만들어 지기를 원하게 되는데, 이런 사회는 백성을 근본으로 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대두되기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맹자는, 대략 500년을 순환주기로 사회는 다스려짐과 혼란함을 순환하며 변천한다고 보았고, 요와 순 임금이 홍수와 짐승에 의한 장애를 극복한 시기를 한 주기로 보았으며, 상(商)에서 주에 이르는 시기를 또 한주기로 보았고 주에서 맹자 당시까지를 또 한 주기로 보았다. 그리고 각 시기가 끝날 때는 언제나 폭군의 폭정과 전쟁이 일어나서 망하고, 그때마다 새로운 왕이 나타나서 다스리게 된다.

봉건국가가 무너지고 군주국이 세워져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모두 혼란한 시기에 살았던 맹자는, 이런 혼란기를 극복하고자 시대상황을 분석하고 이상사회를 제시하며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하였지만 이와 정반대로 군주들의 통치이념은 부국강병책이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농민이 경제활동에 중심이었지만 빈부격차가 심하였고 일반 백성들은 안정된 직업의 부족과 형벌로 인한 죽음 때문에 무엇보다 우선으로 식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윤리와 도덕을 지키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여겨, 교육과 학교를 설립이라는 장치가 필요함을 알게 된다.

그래서 자연 상태를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 예의나 가르침 없이 안일하게 사는 금수와 같은 생활 상태로 규정하여, 자연적인 질서가 존재하는 상태를 성인이 신하를 시켜 인륜을 가르치게 하는 상태로 보았고, 무위의 상태에서 인륜을 실천하는 사회로 변모해서 도덕이 살아있는 정치사회로 넘어가야만 비로소 인간이 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맹자의 사상은 ‘성선설(性善說)’을 바탕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맹자』「공손추상 6장」에서는 “사람들은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선왕들은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정치를 하였다.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한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도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는 것 같이 쉬울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어진정치라는 것은 차마 어찌하지 못하는 사람의 선한 마음에 근거한다고 보았다.(다음호에 계속)

이 희 용
문화평론가, 향토사연구가, 대진대학교 박사과정원우회장, 한국스카우트경기북부연맹 이사, 전경기도예총부회장, 포천시수능시험장유치위원장, 포천신문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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