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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근 에세이] 포천시는 새로운 문화 컨텐츠 개발해야


박정근 기자 / jkparkdj@hanmail.net입력 : 2013년 11월 28일
↑↑ 박정근 대진대 교수, 한국 셰익스피어학회 회장, 포천신문 칼럼위원회 고문
ⓒ (주)포천신문사
포천은 경기북부에 위치하고 있지만 접경지역이라는 이유로 군사시설이 산재하고 있어 문화라는 이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던 곳이다. 다만 서울의 인접도시라는 지리적 특성과 천연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가 맞물려서 서울시민들의 주말여행의 대체지로 막걸리와 이동갈비 등의 음식문화의 소비지로만 명맥을 유지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포천시는 이러한 악조건의 환경을 수동적으로만 받아들이고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낙후된 도시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지방자치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시대에 지방이나 지역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 지방사와 지방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고 서울학, 부산학 등의 다양한 형태의 지방학이 나타나고 있고 연구소를 통한 연구가 활발해지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퓌뒤푸(Puy Du Fou)라는 지역은 포천과 비교해서 별로 낳을 게 없는 곳이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적극적인 참여와 봉사로 프랑스인들에게 사랑받는 문화관광지로 탈바꿈하였다. 원래 퓌뒤푸는 문화유산이 많거나 자연이 풍부한 지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지역은 “보잘 것 없는 자연 숲과 폐허에 불과한 중세의 성이 지역의 정체성과 경제적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문화자원”으로 선택되었을 뿐이다.

퓌뒤푸에 비하면 포천은 자연이나 문화유산이 더 풍부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퓌뒤푸의 숲은 식물 자원과 더불어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도록 조성되었다. 특히 관광객들을 유입시키기 위해서는 성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이 필수적이다.

그들은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나 야생 동물, 해외에서 들여온 동물 등 1000여 마리의 동물”들을 숲에서 살게 했으며,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흑돼지, 닭, 염소, 사자, 호랑이, 늑대, 사슴, 낙타, 타조를 만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한 관광객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포천의 경우 퓌뒤푸에 못지않은 산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퓌뒤푸식의 동물 서식지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본다.

문화컨텐츠는 단순히 지역의 동물과 식물만으로는 축제적 요소를 만들 수 없다. 자연을 지역의 역사와 유기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역사적 스토리가 있는 컨텐츠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건은 꼭 긍정적일 필요가 없으며, 그 지역의 과거를 돌이켜볼 수 있으면 관광객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 것이다. 퓌뒤푸에서 선택한 역사적 사건은 지역에 살던 민중들의 봉기와 관련되어 있다. 1793년 3월 10일 방데현과 주위 현에서 농민들, 성직자, 왕당파가 연합하여 일으킨 봉기라고 기록되고 있다.

민중봉기의 첫 번째 요인은 경제적.사회적 불만이었고 두 번째는 정치와 종교적 문제이었는데, 전자는 “1792년에 발령된 식품 규제령과 물가 상승 그리고 궁핍”이었고 후자는“루이 16세의 죽음 역시 봉기의 한 요소”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봉기당시 방데현의 경제적 불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민중봉기라는 역사적 사건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농촌 지역의 빈민계급의 경제적 상황이 최악이었다고 보는데. 빈민계급의 일당이 9, 10쑤에 불과한데 빵 값은 1파운드에 7, 8쑤에 달했으며, 다른 지역에서는 밀 값이 세 배로 뛰었으니 그들의 삶의 질은 형편이 없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기도 벅찬 경제상태에 반기를 든 것으로 파악한다.

이 역사적 사건은 프랑스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왕당파의 조종을 받은 농민들의 봉기라는 오명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당시 궁핍에 시달리고 있는 농민을 비롯한 빈민계급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집권 공화파에 대한 반동의 정서가 이해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과정은 지역주민이나 관광객들로 하여금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 가지는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게 한다. 프랑스혁명이라는 명분 있는 흐름에 거스르는 스토리를 활용하는데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방데현의 민중봉기의 반동적 요소는 이 지역에 대한 심리적 상처가 되었던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프랑스혁명이 가져왔던 피비린 내나는 폭력성을 간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유, 평등, 박애라는 대혁명의 원칙과 이념에 대한 적극적 반발이 아니라 징집법과 같은 급격한 제도적 제도상의 변화에 대한 농민들의 소극적 저항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왕당파의 사주에 의한 농민들의 반란이라는 역사적 낙인“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포천의 역사적 사건도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특히 산정호수와 관련된 ‘궁예’에 대한 후삼국시대의 역사적 사건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본다. 궁예는 왕족출신으로 어릴 때 눈을 다쳐 애꾸눈이라는 장애자적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다. 그는 후고구려를 세워서 개성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히다가 철원 쪽으로 수도 옮기려고 하다가 이에 반대하여 왕건을 지지하는 개성호족들의 저항에 부딪쳐 반란에 휩싸이게 된다.

그는 승려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술과 여자를 즐기고 폭정을 일삼다가 자신의 부하였던 왕건에게 패하여 멸망한 부정적인 역사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어 포천지역에서 그에 대한 역사적 스토리를 활용하는데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방데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궁예는 남자로서 후고구려를 세우려는 웅지가 개성호족이라는 지역적 요인에 의해서 좌절되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부도덕하고 패륜적인 인간이 아닌 불운한 역사적 지도자라는 새로운 역사적 접근을 함으로써 오히려 그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하고 비극적 연민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포천은 많은 역사적 인물을 지니고 있는 지역으로 인물과 연관된 문화컨텐츠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면 포천의 문화적 브랜드 이미지를 배가하는데 예상 밖의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박정근 / 대진대학교 교수, 한국 셰익스피어학회 회장, 포천신문 칼럼위원회 고문
박정근 기자 / jkparkdj@hanmail.net입력 : 2013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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