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을 역사적 정황과 자료 분석에 의해 유추해보면 구석기 시대부터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 후 신석기, 청동기 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한반도 역사와 운명을 같이하며 고유의 문화를 간직하며 살아왔다.
역사적으로 포천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 중기 정도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남진정책으로 인한 국경이 변화되었던 기록과 함께 고구려 시대 마홀(馬忽)이라는 지명이 사용되었다는 것이 유적 발굴시 지명을 새긴 글씨가 출토되어 그 증거를 뒷받침 하고 있다.
그 후 신라의 국경선이 북으로 올라와 고구려의 정신을 이어받았다는 궁예의 전설과 왕건과의 군사적 충돌에 대한 기록으로 이어져 시대를 지날 때마다 고유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물론 우리 조상들은 산과 물의 흐름을 중요시 하여 지명마다 그 중심에 풍수적 성격을 가미하여 독특한 특징을 가미하였는데, 그로 인해 우리 포천도 물의 흐름에 근거하여 여느 지역에 서로 향하는 물줄기와는 달리 한내는 동쪽으로 끌어안고 흘러 나간다는 데서 유래 했다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포천에는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는데 사육신 유응부, 봉래 양사언 선생, 백사 이항복 선생 등 충신과 명현을 많이 배출한 뼈대 있는 충절과 선비의 고장으로 그 자존심이 매우 높다.
어느 고장에 가던지 자기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과 정신 그리고 자랑거리를 잘 정리하여 방문객이나 연구자들에게 스스로의 고유한 향기를 보여 문예상품화를 모색하고 후세에 자랑할 수 있는 내공을 축적하여 자랑거리로 만들어 열심히 홍보하고 그것을 유산으로 물려주려는 노력으로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박물관과 민속촌 그리고 전통거리와 시장을 관광코스로 안내하는 것은 조상으로부터의 슬기로운 전통과 풍습을 보여주고 면면히 이어오는 삶을 체험케 하여 역사와 문화를 올바로 알리고자 하는 정리된 모델하우스일 것이다.
어느 나라를 가던지 고유의 정체성이 스스로를 높이는 기회가 되고, 다른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 정보의 흐름이라 할 수 있는데, 과연 우리는 무엇을 보존하고 있으며 어떤 것을 알리려고 하는지 준비된 것이 무엇인가를 정리할 필요하게 되었다.
흔히 문화는 변화에 시대의 흐름을 읽고 예측되는 준비과정을 거쳐야 지금보다는 한걸음 앞을 볼 수 있을 것인데, 우리는 개발과 발전에서 소외되거나 군사적 요충지로 인한 지속적인 피해 등으로 서운함이 느끼면서 정신적인 근거마저도 잃어버리고 정리되지 않은 혼돈 속에서 스스로를 묶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명예와 긍지를 지니고 이어온 조상의 슬기로움과 긴 세월을 이어온 잠재된 정신이 마음속에 자리하기에 닥쳐오는 고난도 의연하게 극복할 수 있는 준비와 실천이 필요함을 경험에서 터득해오고 있다.
또한 포천이라는 지명 속에는 포용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뜻 깊은 의미도 함축하고 있으며, 검소와 절제를 바탕으로 하는 올바른 가치관이 확립된 의로운 조상들이 의연한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아무리 강한 위협에도 강인한 지조로 뜻을 굽히지 않았고 목숨을 던지면서도 직언을 하여, 닥쳐올 형벌마저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기개가 있던 그 마음 바탕에는 청렴하고 깨끗하여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온전한 정신이 이어져서 삼일 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에서 권동진, 이종일, 박동완 3명이 포천출신이었고, 빼앗긴 나라를 찾고자 목숨을 건 투쟁을 지나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인한 폐해로 인해 우리의 고귀한 정신은 호구지책으로 인해 중심을 잃어버리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 정신을 차분하게 찾고 행하여 기둥에 쓸 나무를 서까래로 쓰거나 아무 나무로나 대들보를 올리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능력과 역할을 충실히 발휘하여 옛 것을 오늘에 적용하여 새롭고 조화로운 문화를 스스로 가꾸어 나가 미래가 밝은 포천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