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사계절이 뚜렷하여 다른 어느 민족보다 일찍 일정한 곳에서 생활하는 정착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농본주의를 중심사상으로 삼아 왔으며 저장이 필요한 곡물 농업으로 생존을 유지해 왔다.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기온의 변화와 강수량의 많고 적음에 민감하게 되었고 예부터 기온과 강수량은 우리 민족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정도였다. 선조들은 농사를 잘 짓기 위하여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오래도록 관찰하여 한해를 24절기로 나누었다. 그 중 입하(立夏)는 여름의 시작이며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된다는 일곱 번째 절기이다.
이 무렵 하양, 빨강, 분홍, 그리고 노랑 등 자신이 제일 먼저 봄소식을 알리고자 형형색색으로 온 몸을 치장했던 이른 봄꽃들은 지고, 화려하고 찬란한 여름 꽃들이 개화하는 가운데 나무와 같은 식물들은 본격적으로 성장 채비에 돌입한다. 이즈음에 우리 한반도 온 산천에 퍼져 있는 소나무들도 번식을 위하여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우리 집 정원의 소나무들도 저마다의 모양으로 기개를 뽐내며 서있다.
이 소나무들은 이곳으로 이사를 하면서 어린 묘목을 심은 것이다. 몇 년 동안은 그 꽃을 잘 볼 수 없었는데 올 봄부터 서로 경쟁을 하듯이 새순을 하늘로 올리며 옆구리에 주렁주렁 송화를 거느린다. 소나무는 개화시기에 오로지 가지 끝에서 각각 하나씩만 꽃대를 위쪽으로 올린다. 그리고 꽃대 둘레에 송화 가루를 거느리고 보일 듯 말듯 보라색 꽃을 피운다. 결코 옆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돌아보며 한눈을 팔지 않는다. 이렇듯 소나무는 꽃조차도 온 몸에 소름을 돋을 정도로 그 기상을 자랑하려 한다. 가히 선비 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소나무는 물과 거름이 너무 많으면 고사한다. 최소한의 수분과 영양분만으로 아주 느릿느릿 조금씩 자란다. 소나무 밑에 수북이 쌓여 있는 솔잎은 물과 양분이 너무 과하게 뿌리로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고 병균과 해충이 뿌리로 침투하는 것을 방지하여 스스로를 잘 방어한다. 그래서 수많은 나무 중에 소나무만이 척박한 황토와 기암괴석 틈에서 수백 년에 걸쳐 모진 풍파를 견디며 굳건히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소나무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마음이 조급해서 욕심 부려가며 빨리 크게 자라는 것을 자랑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겸손해 하며 자라고 있는지도 모르게 마냥 살며시 커간다. 그래서 아주 튼튼하며 강하다. 소나무는 나무들 중에 유일하게 줄기 한 가운데에 곧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태풍 같은 강한 바람이 몰려와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쓰러지지 않는다. 이처럼 소나무가 나무 중에 왕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선비정신을 삶의 지표로 삼아 매란국죽(梅蘭菊竹)으로 사군자(四君子)를 정하여 변하지 않는 절개와 지조를 가지고자 했다. 그런데 소나무는 그것들보다 조금도 뒤지지 않음에도 사군자에서 제외시켰다. 약간 의외라는 생각이 들을 수 있어도 아마도 소나무의 품위와 기상을 생각하면 사군자와는 격이 다르다고 생각하여 한격을 높여 준 것이 아닌가 싶다. 서슬 퍼런 동장군이 살을 에이는 듯한 칼바람을 몰고 와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사계절 푸르름을 간직하는 그 모습을 보고 자연물 중에서 으뜸이라고 생각하며 높게 대우를 해 준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조상들은 낙락장송의 금강송(金剛松)으로만 궁궐 등 대표적인 건축물을 지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슨 일을 시작하려 할 때 소나무를 들먹이며 초심을 간직하고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자 다짐을 한다.
공자는 인자와 선비의 덕을 소나무에서 배우려고 했다. 소나무가 겨울이 되어도 잎이 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어 지조의 변함없음을 비유한 공자의 말씀은 선비정신의 강인한 은근과 끈기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의「자한(子罕)」편에 ‘세한연후지송백지절(歲寒然後知松柏之節, 겨울철이 와서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 ―지사의 훌륭한 뜻과 기상은 나라가 어려울 때에야 알게 된다는 뜻―이라 했다. 또 “뜻 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하여 어진 덕을 해치지 않고 목숨을 버려서라도 어진 덕을 이룬다.” 하였다.
추사(秋史) 김정희는 1844년 몹시 견디기 힘든 고통스러운 제주도 유배생활을 하면서 외로움과 고달픔을 위로하고 이겨내고자 국보 180호로 지정된 세한도(歲寒圖)를 그렸다. 그 그림에서 우리는 설송(雪松)의 굳은 기상과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민족의 기운 같은 상징물을 가슴속에 간직하여 하루하루 새로운 다짐 속에 초심을 잃지 않고 살고자 하는 뜻이 있었던 것 같다. 이렇듯 우리 한민족은 소나무와 함께 운명공동체로서 민족정신을 이어왔다.
사람이 태어나서 소나무처럼 평생을 흐트러지지 않고 꼿꼿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성인군자나 산중에서 수련하는 고승들이나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범인은 누구나 한번쯤은 일탈하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신문이나 방송 등 매스컴에서 정치인이나 사회지도자들이 금품 등을 소위 뇌물이라는 명목으로 수수하여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경우가 종종 보도된다. 우리는 그들에게 혀를 차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욕망의 대표적인 상징이며 대접 받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가진 인간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어떤 이가 주려는 돈을 거절하고, 산해진미의 안주에 술대접을 마다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어찌 보면 그것이 인지상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패가망신(敗家亡身)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보아왔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금광에서 금맥을 찾듯이 각 나라에서는 청백리를 발굴하여 포상하고 널리 알려 모범을 보이려 했다.
그러한 청백리를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서도 우리세대에서 그러한 사람을 발견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건국초기에 김홍섭(金洪燮)이라는 대법원 판사가 있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였던 1915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1965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조부께 한학(漢學)을 배웠고 독학으로 법률 공부를 해서 1939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日本大學)에 입학하여 두해 만에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다.
그는 해방 후 판사로 일하면서 사형수의 대부가 되어 뒷바라지를 하며 죄수들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으로 인해 ‘수인(囚人)들의 아버지’, ‘법의 속에 성의(聖衣)를 입은 사람’등의 칭호를 얻었다. 판사였지만 판사답지 않게 스스로 가난한 삶을 선택했다. 건국 초기 에 대부분의 법조인들은 자신에 부를 위해서 축재에 혈안이 되었었는데 그는 매우 청빈한 삶을 지켰다. 가난한 법관으로서 그의 삶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1959년 전주지방법원장 취임 당시 일화다. 평소 허름한 작업복 차림에 고무신을 신은 채 도시락을 들고 출ㆍ퇴근하던 그에게 제대로 된 양복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에 "고향 땅에 법원장으로 부임하며 외투 한 벌 없이 가서야 되겠느냐"며 지인이 외투를 선물했을 정도였다. 그는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자신의 삶에 지장을 준다며 처가에서 보내준 쌀가마니조차 되돌려 보냈다. 그로인해 후대 법관들로부터 가장 존경하는 선배 법관으로 추대되었다.
중국 작가 장쓰안(張世安)의『평상심』에는 욕심에 대하여 경계하는 재미있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인도의 열대림에서는 특이한 방법으로 원숭이를 잡는다. 작은 나무 상자 속에 원숭 이가 좋아하는 견과(堅果)류를 넣은 뒤, 위쪽에 손을 넣을 정도의 작은 구멍을 뚫어 놓는다. 그러면 견과를 움켜쥔 원숭이는 구멍에서 손을 빼지 못하고 사냥꾼들에게 잡힌다. 손에 들어온 것은 놓지 않는 원숭이의 습성을 이용한 사냥법인 것이다.
그 먹이를 먹을 욕심에 놓치 못해 결국 사로잡혀 죽게 되는 이 원숭이 사냥감을 두고 우리는 미련한 놈이라고 손가락질 하며 조소를 금치 못한다.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 봐도 우리 인간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중국 고사성어에는 분(分)에 넘치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에 지만계영(持滿戒盈)이란 말이 있다. 이는 공자(孔子)가 노(盧)나라의 환공(桓公)을 방문하여 그의 집에 사당(祠堂)에 들어가니 하나의 의기[欹器; 중국 주(周)나라 때 임금을 경계하기 위하여 기울게 만든 그릇]가 있는 것을 보았다. 공자는 환공에게 그 그릇의 용도에 대하여 물었다. 그에 환공은 “그 그릇은 가득차면 엎어지고, 부족하면 기울고, 그리고 적당하게 차면 반듯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환공은 자신에 처신을 경계하고 조심하고자 사당에 그것을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성경에서도 "욕심은 죄를 낳고 죽음을 낳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죽음에 이른다는 뜻이다. 욕심을 특히 경계하고 조심하라는 말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욕심으로 가득 찬 동물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인하여 인류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나친 욕심이 화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어 결국에는 인간성까지 상실하여 파멸에 이르는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결국 사람이 소나무 같이 늘 변하지 않는 상청(常靑)의 기상과 절개를 지니기 위해서는 초심을 지키며 욕심을 버리는데서 시작한다고 하겠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면 무리하지 않게 되고 그리하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소신 있게 만들어 당당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나긴 매서운 동한을 견뎌내고 사시사철 푸르른 모습을 간직하며 그 기상을 뽐내는 소나무 같이 우리 사회에서도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면 평안한 마음으로 안면에 파안대소를 가득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잠시 생각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