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장마와 폭염으로 일상의 삶을 유지하게 쉽지 않다. 지루하게 내리는 장마철은 필자가 새벽마다 즐기는 테니스의 재미를 빼앗아 갔다. 결국 천변을 뛰는 정도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상의 리듬을 깨는 날씨를 탓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차라리 날씨의 변화에 사람이 적응하고 거기에 맞는 대체적 활동을 만들어가는 것이 현명하다.
장마가 끝나자 찾아온 폭염은 잊고 있었던 휴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매주 몇 번씩 참여해야하는 셰익스피어 연극연습 때문에 하루의 여유도 만들어내기 어려웠다. 방학이 끝나가는 데 이대로 머뭇거리다가는 몸과 마음이 피곤한 상태로 다시 학기를 시작할 것이 뻔하다. 연습을 하루 빠지더라도 동해바다로 가서 몸을 담그기로 결심하였다.
선후배들과 함께 차를 몰고 가기로 하였다. 여행은 시작되었고 경춘 고속도로를 통해서 한참을 가다서다의 정체된 시간이 지겨워질 시점에 길이 뚫리기 시작했다. 가는 동안은 그저 동해바다를 보면 마음이 개운해질 거라는 욕망밖에 없었기에 가는 동안의 다른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물론 동해 여행은 그동안 한두 번이 아니라서 크게 호기심이 동할 것도 없다. 별미라고 소개받은 음식과 술, 친구들과의 농담, 노래는 뻔한 코스이라서 그 시간에 맞게 몰입하면 된다. 하지만 작은 봉사에 대한 칭찬과 박수는 참여한 사람들의 사기를 북돋아 준다. 아무리 반복되는 일상이라도 관심과 몰입이 개입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남의 이야기를 그저 흘려들어서는 화자의 흥을 올려주기 어렵다.
필자는 남의 이야기와 노래 등의 여흥에 귀를 기울이고 반응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흔히 우리는 칭찬과 반응에 인색해서 인간관계를 무미건조하게 만들기 일쑤이다. 필자가 독자들에게 권하고자 하는 놀이의 태도는 동참자에 대한 끊임없는 배려와 관심, 그리고 긍정적인 반응이다.
마지막 날 밤에 다음날 오전의 스케줄에 대해서 격론이 벌어졌다. 한 팀은 설악산에 필히 짧게라도 올라가자는 것이고, 다른 팀은 너무 더우니 바닷물에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좀처럼 의견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서 따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분열의 조짐이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다 나온 절충안은 두 계획을 짧게 합쳐보자는 것이었다.
우선 아침 일찍 설악산 숲속 길을 걸어서 등산 팀을 만족시키고 바로 동해로 달려가서 마지막으로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양자의 욕구를 어느 정도 만족시켜주고자 시도하였다. 일행은 지난밤의 격한 토론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동해에서 돌아오는 피서길은 일찍부터 밀리기 시작한다. 게다가 주말이라 각오를 단단히 하고 시간에 쫓기기 보다는 돌아가는 과정을 즐기자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었다. 강촌 IC에 오자 차가 기어가는 수준이라 운전하는 것도 지겹고 잠이 쏟아지기도 한다. 차라리 국도로 가서 경치라도 구경하자고 제안해본다. 밀리는 것에 질려버린 동승자들도 마지못해 동의한다. 그래 나중에 욕을 먹더라도 저질러서 변화를 주고 우회해서 돌아가는 맛도 즐기자고 생각한다.
한참을 돌아서 강촌역 가까이 오니 경춘 국도로 들어가는 신호가 짧아 삼십여 분 거북이걸음으로 운전하다 강촌 강가에 오니 석양이 지는 서쪽 하늘이 아름답다. 모두들 환호하며 우회도로의 지체를 잊고 셔터를 눌러댄다. 욕을 먹을 걸 각오하다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칭찬이 싫지는 않다. 그래 인생은 그저 목표를 향해서 달리는 경주가 아니다. 인생은 태어나서 죽은 과정이 아니던가. 여행은 목적지만 보고 달려가서는 놓치는 것이 많다. 지금부터 오랜만에 국도의 경치를 즐기는 여유를 가져보자.
청평을 지나자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다. 이왕에 늦은 거 마지막 만찬을 즐기자고 제안한다. 마침 생선구이집이 나타난다. 식사하고 나서면 길도 한결 풀리겠지 라고 자위하며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서울에 도착하면 하려고 했던 해단식을 미리 하자. 운전자만 빼고 소주도 한잔씩 들이키며 다들 멋있는 귀경길에 대해 한마디씩 거든다.
사람이 많으면 갈등도 불거지고 소리도 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지막 날에 보여주었던 양보와 절충은 훌륭했어. 자기주장만 앞세우면 서로 상처를 주기 쉽다. 자칫 운전자의 선택을 탓하기 쉬운데 돌아가는 여유를 모두 즐겨주어서 감사하다. 우리는 멋있는 피서를 다녀온 거야. 함께 치는 손뼉이 경쾌하니 피서 여행은 분명 성공한 것이다.
박정근 / 대진대 교수, 한국 셰익스피어학회 회장, 포천신문 칼럼위원회 고문, jkparkdj@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