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국가에서 언론의 자유는 헌법이 정한 인간의 기본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본질이다. 신문과 방송은 언론의 자유를 실현하는 효과적인 도구로서 현대인들에게 없어서는 안된다. 일반적으로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는 경우는 독재정권과 같은 타의에 의해서 언론의 자율성이 무너질 때이다. 하지만 한국일보 사태는 언론사 내부의 문제로 인해 기자들의 기사작성 권리가 강제적으로 탈취된 사건이다.
한국일보는 4대 일간지로서 중도를 표방하는 신문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장재구 회장은 용역을 고용하여 신문의 기사를 쓰는 편집기자들을 편집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폐쇄하는 사태를 일으켰다. 그는 상사의 명령을 수용하겠다는 ‘근로제공확약서’를 쓰지 않은 기자들을 편집실의 신문기사 작성·송고 전산시스템에 접속하는 것을 차단하는 언론사 초유의 상황을 자초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한국일보 기자들은 법원에 사측의 편집국 폐쇄조치를 해제하라는 목적으로 회사의 업무방해와 출입방해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한 바 있다. 또한 그들은 서울지검에 직원에게 수당과 퇴직금 수억원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 등의 사주의 비리를 고발함으로써 노사 간의 대화가 물 건너간 최악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사실 한국일보는 고 장기영 회장, 고 장강재 회장 부자의 모범적 경영으로 노사간의 인간적인 유대를 강조하는 조직문화로 유명하였다. 이런 가족적인 분위기로 기자들 상호간의 호칭이 상사와 부하보다는 형과 동생 사이로 발전하여 한국일보를 ‘기자 사관학교’로 부르기도 하고 일간지로서 전성시대를 누렸던 것이다. 그러나 후임자들이 언론에 대한 창립정신을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기자들을 불법적으로 탄압함으로써 최악의 언론탄압 신문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언론기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적인 기업이라 할지라도 시민들의 언론의 자유라는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익기관이다. 한국일보는 가족들 중 후임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유력자들을 중심으로 파벌이 조성되었고, 가족적인 분위기였던 기자들도 파벌에 따라 나뉘어 갈등하는 분열의 양상을 띠게 된다. 이런 부정적 분위기는 이 신문의 끈끈한 조직문화를 파괴하고 실력보다는 충성심이 인사의 기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경쟁신문들과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협력하지 못하고 “회사가 권력투쟁에 휘말리면서 능력 있는 기자가 하나둘 떠나갔”으며, “경영난도 점점 심화”되고 말았던 것이다.
재정적인 위기도 한국일보 사태의 원인 중의 하나로 1997년 외환위기 동안에 5500억원의 부채로 부도위기에 몰린 바 있으며, 채권단의 사적 화의의 결정으로 회생의 기회를 부여받았다. 2002년부터는 워크아웃에 돌입한 상황에서 장재국 회장이 라스베가스 거액 도박 의혹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현 장재구 회장은 그 틈을 이용하여 최대주주로서 권력투쟁의 승자가 되었던 것이다. 한국일보는 언론의 본질을 망각하고 자본주의적 이권싸움과 권력투쟁에 휘말리면서 몰락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언론이 사회적 정의와 진리를 위해서 몸을 던지는 기자가 신문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편집실 밖으로 내몰리는 객체로 전락했을 때 이미 언론으로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오랫동안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한국일보의 위기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착잡하기 그지없다. 정론지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기자들과 편집인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필요했을까. 잠 못 이루는 수많은 밤과 사회정의와 진리를 위해서 불꽃 튀는 논쟁과 조정의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사의 사주가 경영권을 위해서 형제의 난을 벌이고, 재정위기에도 불구하고 거액도박을 하는 도덕불감증에 걸리면 기자들의 사투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것이 한국일보 사태의 비극성이라고 본다. 이런 경우, 언론이란 결코 사주의 것이 아니라 그 신문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것이란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독자들의 사랑이 없었던들 4대 일간지로서 한국일보는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재구 회장은 언론의 주체인 기자와 독자들의 입장에서 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용퇴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