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미래지향적(未來指向的)이란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렇다.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역사를 저버려서도 안 되지만 과거에만 너무 연연해서도 안 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은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용사(用事)와 신의(新意)는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옛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해나가야 한다.
우리는 과거 속에 사는 경향이 있다. 시대(時代)가 바뀌고 데이터(data)가 바뀌었는데도 옛 것만을 고집한다. 새로운 것을 얼른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얼른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인정하던 아니하던 이미 시대는 바뀌었고 데이터도 바뀌었다. 그 흐름(trend)을 빨리 읽어야 한다. 현실을 빨리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희망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낙관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희망적으로 보아야 밝은 세상이 보인다. 낙관적으로 살아야 인생이 즐겁다. 물이 반 정도 차 있는 컵을 보고 사람들은 뭐라고 말하는가? ‘물이 반 컵 밖에 안 남았네’ 하는 사람은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요, ‘아직도 반 컵이나 남았네’ 하는 사람은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이다.
세상을 낙관적(樂觀的)으로 보아야 한다. 희망적(希望的)으로 보아야 한다. 미래지향적(未來指向的)으로 보아야 한다. 앞을 내다보고 가는 사람에겐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다. 미래에 대한 설계(設計)를 하고 미래에 대한 투자(投資)를 하자.
같은 미래를 그리더라도 과거에 근거를 두면 운명론자가 되나 미래에 근거를 두면 이상론자가 된다. 운명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상론자가 되어야 한다.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해 나가야 한다. 미래는 우리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가 좋은 생각을 하면 그만큼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노력(努力)하는 것만큼 우리들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미래(未來)를 설계할 때 조금은 멀리 보고 넓게 생각하는 여유를 갖도록 하자.
희망적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자신감(自信感)을 가지고 본다는 것이요, 근거(根據)를 가지고 본다는 것이다. 근거를 가지고 세상을 본다는 것은 관찰(觀察)을 통해 본다는 것이다. 막연하게 세상을 봐서는 안 된다. 관찰을 통해 철저하게 세상을 봐야 한다.
철저하게 풍토(風土)를 관찰하고 사람을 관찰하고 흐름을 관찰해야 한다. 풍토를 모르고 달려들면 역풍(逆風)을 만나게 되고 사람을 모르고 달려들면 낭패(狼狽)를 당하게 되며 흐름을 모르고 달려들면 외면(外面) 당하게 된다. 풍토란 환경(環境)을 말하는 것이다. 분위기(雰圍氣)를 말하는 것이다. 조건(條件)을 말하는 것이다. 조건을 알아야 한다. 순풍(順風)에 돛을 달아야 항해가 순조로운 것이다.
사람이란 인품(人品)을 말하는 것이다. 대화를 할 때 사람을 말하는가? 물건(物件)을 말하는가? 아이디어(idea)를 말하는가? 아이디어에 대해 말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라. 다음으로 물건에 대해 말하는 사람을 대하라.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을 멀리 하라. 사람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자칫 화(禍)를 부르게 마련이다. 이 같은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흐름이란 민심(民心)을 말하는 것이다. 민심은 묻는다. 진실성(眞實性)이 있는가? 일관성(一貫性)이 있는가? 예측가능(豫測可能)한가?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된다. 속임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거품이 있어서도 안 된다. 사실을 호도해서도 안 된다. 진실성이 있어야 한다. 이랬다저랬다 해서는 안 된다. 시류에 편승(便乘)해서도 안 된다. 조령모개(朝令暮改)해서도 안 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해서도 안 된다. 변함이 없어야 한다.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또한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예측할 수 있어야 미래를 전망(展望)할 수 있고 대책(對策)을 세울 수 있다. 예측할 수 있어야 믿음이 생기고 신뢰(信賴)가 쌓인다. 믿음이 제일이다. 믿음은 예측가능 할 때 생기는 것이다. 알아듣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