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농이해조선생기념사업회(회장 홍을표, 이하 기념사업회)와 포천문인협회(회장 이원용)는 6월 10일 오전 11시 경복대 포천캠퍼스에 있는 이해조 선생 묘역에서 이해조 선생 서거 86주기 추도식을 거행했다.
추도식에는 종손을 대표해 인평대군종친회 이해동 회장, 서장원 포천시장을 대신해 한태호 경제생활지원국장, 이만구 포천문화원장, 박광조 포천미래포럼 회장, 김산동 포천미래포럼 부회장, 이병찬 대진대 국문과 교수, 양호식 법무사, 김자현 소설가, 이중효 전 포천시의회 의장, 이흥구 전 포천시의회 의원, 황행일 전 포천미협지부장, 김성진 마홀문학회 회장, 박혜자 포천문인협회 수석부지부장, 임갑연 포천예총 사무국장, 백승훈 사색의향기 부회장 등 문화예술계 인사 5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이병찬 대진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기념사업회와 문인협회를 대표해 양 단체의 대표가 추도사를 하고, 포천시를 대표해 서장원 시장의 추도사를 한태호 국장이 대독했다. 이어 김자현 소설가의 연보낭독, 박혜자 포천문인협회 수석부회장의 추모시 낭송의 순으로 진행됐다.
기념사업회의 홍을표 회장은 이날 추도사에서 “문학과 애국계몽운동 그리고 근대교육 등 3분야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기신 선생님의 뜻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요청된다”면서 “기념관에는 문학, 언론, 그리고 근대교육 등 3개의 전시실이 필요하게 될 것이고, 문학전시실에서는 선생님의 작품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애국계몽전시실에서는 선생님께서 활동하신 국채보상운동 등의 계몽운동 활동 등의 자료를 전시하고, 근대교육전시실에서는 선생께서 설립하신 신야의숙, 낙연의숙(보광학교), 돈명의숙, 기호학교 등의 교육관련 자료를 전시할 것”이라고 구체적인 구상을 밝혔다.
홍 회장은 기념관의 의의에 대해 “이곳에 오면 한국 근대소설의 뿌리를 볼 수 있고, 근대계몽운동의 발자취를 배울 수 있고, 나아가 우리의 근대교육의 산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조만간 포천의 유지들을 중심으로 전국의 뜻있는 분들과 힘을 합쳐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 (주)포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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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사(全文)
저희가 선생님을 모시기로 하고 사업회를 창립한 때가 2005년 10월 25일이니 이제 9년이 되어 갑니다. 그간 선생님을 기리는 학술대회, 문학대회, 자유종 100년제, 연극제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해 왔지만, 아직도 저희의 숙원 사업인 전집발간과 기념관 건립은 추진이 되고 있지 않는 현실입니다.
저는 요사이 동농 선생님의 교육관련 자료를 통하여 공부하면서 실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동안 소설가로서만 인식되어 왔던 선생님을 근대 교육의 선구자로서 재인식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급변하는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유교적 구교육의 붕괴와 서양식 근대 문물의 급격한 도입으로 우리의 정신사는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정신적 가치를 지키면서 근대적 가치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려는 동도서기(東道西器)의 견지에서 다양한 교육사업을 전개하셨습니다. 기호흥학회 월보에 기고하신 <윤리학>이라는 논문과 1910년 국치 직전에 출간하신 <자유종>은 선생님의 교육 사상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우리 글과 우리 정신 및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민족주의, 신분과 성별 지역에 차별을 두지 않고 모든 국민에 교육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민주주의 교육사상, 그리고 서구의 것이라도 우수한 것은 받아들여 배워야 한다는 사회진화론적 합리주의 등이 선생님의 교육사상의 핵심입니다. 선생님은 글을 통한 교육계몽에도 앞장섰지만, 실제로 교육사업을 통하여 실천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소설 창작 활동도 궁극적으로는 국민 교육의 독본으로서의 역할이 그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역사는 개항 이후 35년 마다 큰 고비를 겪었습니다. 1876년 개항 후 35년이 지난 1910년 국치를 당했고, 일제치하 35년 후 해방을 맞았습니다. 해방후 35년 이 지난 1980년 광주 민중의 아픔을 당했습니다. 개항 후 35년은 근대라는 세계사적 파도와 민족 국가의 형성이라는 이중의 과제의 중첩 반목 대립 과정이었고 그 과정의 결과 나라를 잃어버린 치욕의 역사를 겪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나라를 잃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결코 민족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민족의 뿌리는 말과 글 그리고 역사입니다. 동농 선생의 작품과 글 그리고 교육 운동을 통하여 각성된 수많은 국민들의 존재가 바로 민족의 실체입니다. 비록 일제 35년이 우리를 억매였지만 해방후 새롭게 다시 부활할 수 있게 된 것은 동농 선생님이 버리지 않았던 우리 글과 말 그리고 우리의 정신과 역사 그리고 근대 문명에 대한 주체적 수용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포천이 낳은 근대소설의 개척자이시며, 무려 40여편의 작품으로서 당대 최고의 독자층을 확보하여 우리 문단을 이끄신 분이며, 제국신문과 기호흥학회 등을 통하여 계몽사상을 전파하신 애국자이시며, 1904년 낙연의숙(보광학교), 1906년 신야의숙, 1907년 돈명의숙, 1909년 기호학교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근대 학교 운영을 통하여 근대교육운동에 헌신하신 교육자이셨습니다.
문학과 애국계몽운동 그리고 근대교육 등 3분야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기신 선생님의 뜻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요청되는 바입니다. 기념관에는 문학, 언론, 그리고 근대교육 3개의 전시관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문학전시관에서는 선생님의 작품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애국계몽전시관에서는 선생님께서 활동하신 국채보상운동, 제국신문, 기호흥학회 월보의 기고문 등을 전시하고, 근대교육전시관에서는 선생님께서 설립하신 신야의숙, 낙연의숙(보광학교), 돈명의숙, 기호학교 등의 교육관련 자료를 전시할 것입니다.
이곳에 오면 한국 근대소설의 뿌리를 볼 수 있고, 근대계몽운동의 발자취를 배울 수 있고, 나아가 우리의 근대교육의 산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사업이 이루질 수 있게끔 선생님 하늘에서 저희들에게 지혜를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비록 초라한 추도식이지만 동농 선생님은 오늘 우리가 있게 된 데 대하여 지대한 역할을 하신 분으로서 앞으로 깊이 되새기도 기리어 받들어 포천과 우리나라 문화창달에 크게 기여하실 수 있도록 결코 소홀함이 없도록 모셔야 할 분입이다. 저희 사업회에서는 포천의 유지들과 전국의 뜻있는 분들과 힘을 합쳐 반드시 선생님의 전집발간과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