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선은 끝났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준비된 여성대통령’을 들고 나오며 세대교체론을 주창하여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하지만 MB 정권하에서 〈레미제라블〉의 심정을 느꼈던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정권교체의 희망을 접어야 했다.
양극화와 남북갈등, 그리고 좁은 취업문 등의 문제로 고통을 받아온 젊은 세대들은 야당후보를 지지하며 새정치를 염원했지만 지역주의와 안보를 내세운 50대 후반, 60대, 70대의 노년의 결집에 의해서 간발의 패배를 당함으로써 세대갈등의 고통까지 맛보는 설상가상의 심정에 빠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가 빅토리 위고의 “레미제라블”의 상황을 연상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필자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느끼는 절망감과 빅토리 위고의 < 레미제라블 >에 등장하는 젊은 혁명군과의 묘한 유사점을 발견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문호 빅토리 위고의 소설로 나폴레옹3세의 집권에 반대하는 1832년 공화파의 반란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그리고 있다. 작가 자신이 왕정복고를 반대하다 5년간 국외추방을 당한 상황에서 이 작품을 쓴 바 있다.
<레미제라블>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빵을 훔치는 단순 절도로 5년의 판결을 받았으나 네 번의 탈옥을 시도하다가 19년간 옥살이를 하게 되는 장발장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뮤지컬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누렸으며, 다시 영화로서도 만들어져 대중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985년 런던에서 초연된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전 세계 42개국 308개 도시에서 공연된 바 있으며, 70개 이상의 세계적인 주요 뮤지컬 상을 받아 그 문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적 콘텐츠로서 객관성을 입증하였다. 이번 영화의 주인공으로 활약한 휴 잭맨은 이 작품에 대한 자평으로 “원작 소설은 사랑과 희망, 정의 등의 주제가 잘 녹아있다”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은 역경을 딛고 희망을 꿈꾸는 장발장의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장발장은 최근 영화에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 보다 더 뛰어난 영웅이다”라고 주인공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글에서 장발장보다 사회정의를 부르짖다 프랑스 혁명의 바리케이트 위에서 쓰러져간 젊은이들의 최후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그들은 왕정복고 시대의 양극화와 빈부격차에 의해서 고통을 받고 있는 민중들을 위해서 혁명을 주도하고 가담한다. 젊은이들은 라마르크 장군의 장례식을 기화로 혁명의 깃발을 높이 들어 압제를 일삼는 왕정을 전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이 구원의 목표로 하고 있는 민중은 그들의 혁명이 왕정파 군대에 의해서 패배 가능성이 높아지자 냉정하게 거리를 두어 버린다. 군대의 총칼에 의해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 젊은이들은 시민들의 구조 손길을 기다리지만, 정작 시민들은 그들을 구조했다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철저한 기회주의적 계산에 의해서 창문을 닫아버리고 만다.
이 작품의 로망스적 주역인 코제트와 마리우스는 이 혁명의 불기와 함께 사랑의 열정에 빠진다. 장발장은 사회모순에 의해서 창녀가 되었다가 병들어 죽어가는 여인에게 그녀의 사랑하는 딸 코제트를 끝까지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그는 양딸인 코제트를 지키기 위해서 위험한 혁명가와의 사랑에 빠지는 것을 막으려 하지만 일단 불붙은 사랑의 열정은 걷잡을 수 없다. 혁명동지들도 마리우스가 혁명보다 사랑에 몰입하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만 본다.
혁명의 절박성 때문에 죽음을 향해 갈 수밖에 없다는 마리우스의 사랑의 편지를 읽은 장발장은 코제트의 행복을 위해 마리우스를 구출하고자 결심한다. 혁명군 진영에 접근하여 총탄에 맞은 마리우스를 지하 하수구를 통해 구출하지만 마지막 순간 센강 입구를 지키고 있던 자베르 경감에 의해 적발되어 운명적으로 파멸 위기를 맞는다. 이 작품의 플롯은 마지막 순간에 결정적인 전복을 보여주기 위해 자베르 경감의 양심의 문을 열게 한다.
이는 장발장이 ‘이에는 이’라는 복수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자신을 끝까지 뒤쫓아 파멸시키려는 자베르 경감으로 하여금 혁명군에게 체포되어 죽음의 위기 속에서 구출해준 그의 인간애를 깨닫게 한다. 그는 법을 절대적 가치로 두어 범법자인 장발장을 파멸시키려 하지만 불쌍한 시민들에 끝없는 사랑을 베풀고 혁명군에 의해 체포된 자신을 놓아준 장발장의 용서의 미학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 것이다. 자베르 경감은 장발장과 마리우스를 놓아주고 자신은 센강에 몸을 던지고 만다.
빅토르 위고는 복고주의와 공화주의로 분열된 프랑스 혁명 당시의 세대 갈등의 해법을 독자들과 관객들에게 던져주고 있다고 본다. 청년들은 부패한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는 귀중한 존재들이다. 청년들의 생각이 다소 급진적이고 불안정하다 할지라도 기성세대들은 장발장의 용서와 헌신으로, 자베르 경감의 깨우침으로 도와주고 이끌어주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는 젊은이들의 이상과 정열에 의해서 발전되고 정화되어갈 수밖에 없다. 대선 이후에 ‘레미제라블’이 되어있는 진보적 청년들의 ‘새정치’에 대한 합창이 무의미하게 잊혀지지 않도록 치유해줄 의무가 기성세대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명심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