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나라의 왕자가 신하들과 함께 사냥터에서 사냥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해가 저믈어 왕자는 왕궁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그만 아리따운 시골처녀에게 반하고 말았습니다. 왕자는 왕궁에 돌아와서도 그 시골처녀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왕자는 그 시골처녀를 너무나도 그리워한 나머지 그녀를 자기의 신부로 삼아야 되겠다고 결심을 굳혔습니다. 왕자는 그 처녀를 데리고 오는 방법으로 세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첫째, 자기의 권위를 이용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왕자는 수많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가서 위엄이 있는 모습으로 구혼(求婚)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자는 그 방법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럴 경우에 그 시골처녀가 왕자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왕자의 권위에 억눌려서 왕자의 청혼(請婚)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찬란한 영광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왕자는 그 시골처녀를 왕궁으로 초대해서 왕궁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왕비로서의 화려한 삶을 약속하면서 청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자는 부귀와 영화(榮華)라는 조건에 따른 결혼은 원치 않았습니다.
셋째, 시골처녀와 눈높이 사랑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왕자는 시골 목동의 모습으로 그 시골처녀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동네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면서, 그 시골처녀에게 자기의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왕자는 마지막 세 번째 방법만이 자신의 진정(眞情)한 사랑을 그 시골처녀에게 보여주고, 또 자신도 그 시골처녀가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지의 여부를 확인(確認)해 볼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왕자는 이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 이 세상으로 내려오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인시켜주십니다. 그 사랑을 지금 열어 보이십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십니다.
빌립보서 2장7∼8절에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形體)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僕從)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