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신망리역 앞에서 걷기를 시작하여 신탄리를 거처 동성까지 걸어야 한다. 신망리라는 지명은 한국전쟁이 끝난 1954년 피난민들이 정착한 마을인데 미군들이 이곳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라면서 신망리(新새,. 望바랄망, 里마을리)라고 지었다는 설이 있다. 역사를 둘러보는데 아주머니 한분이 역사를 구석구석 청소 깨끗이 한다.
역사 앞 수돗물로 양치질을 하고 철길을 따라 걷는다. 철길을 따라 걸으면 거리도 단축할 것 같아 철길을 따라 걸어보니 생각과 달리 힘이 든다. 자갈길이라 걷기를 포기하고 큰길로 나와 걷는다. 약15킬로만 걸으면 철길의 마지막 종착지 신탄리에 도착할 텐데 북쪽에서 먹구름이 끼고 천둥소리도 나며 바람이 세차게 불어 있는 힘을 다해 걸어 신탄리 역전 앞 보리밥식당에 도착하니 소낙비가 쏟아져 비를 피할 수 있었고 점심도 먹을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
ⓒ (주)포천신문사
식당손님들이 우리 부부를 보고 나물 많이 캤다고 하며 우리 배낭을 확인해본다. 어떤 아주머니는 카메라를 보니 값이 비싼 것 같은데 나물꾼은 아닌 것 같다고도 한다. 한 시간 반쯤 소낙비가 내리더니 비가 그치고 화창한 날씨다. 신탄리[新炭里], 새숯막의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예전에는 고대산의 풍부한 임산 자원목재를 숯으로 가공하여 생계를 유지했던 마을로“新炭”이라 적혀 있으며 철도가 부설된 뒤로는 숯 가공이 더욱 번창했다고 한다. 그러나 ‘새 숯막’이라는 지명이 대광리와 철원 사이에 주막거리가 새로 생겼다 하여 '새술막[新酒幕]'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한자로 지명을 옮기는 과정에서 '술'을 '숯炭]' 자로 잘못 표기하였다는 설도 있다.
신탄리역은 한국의 최북단역이며 애달픈 사연들이 반세기 동안 쌓인 곳이 ‘신탄리역’이다. 일제강점기 1914년, 일본은 223㎞에 이르는 경원선을 개통한다. 경원선은 서울과 원산을 잇는 철도로, 경의선과 함께 동서를 잇는 육지 교통의 중심이었다. 이 철로를 통해 일본은 우리의 각종 자원을 수탈해갔다. 변덕스런 날씨는 언제 비가 왔나 할 정도여서 다시 철원 대마리 방향으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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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에서는 신탄리역이 종점으로 불린 지 약 반세기 후, 경원선의 선로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신탄리역에서 5.6km 떨어진 철원군 대마리까지 연장되는 공사로, 경원선의 종점이 철원으로 옮겨진다는 것을 뜻한다. 철원 월정역까지 철길 복원사업이 한창이어서 덤프트럭들이 많이 다녀 걷기가 불편하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먼지 때문에 걷기가 참 힘들었을 것이다. 이곳에는 배추농사가 참 잘되어 곧 포기가 찰 것 같다. 배추밭이 많아서 보기도 좋았고 농부는 큰 수익을 낼 것 같아 내가 대리 만족을 하며 걷는다.
대마리를 거쳐 노동당사 쪽으로 걷는데 양쪽에는 지뢰지역이며 쉴만한 여유 공간이 조금도 없고 모내기로 바쁜 농기계와 군 차량만 내 달린다. 좀 쉬어가야 하는데 쉴 수가 없어 계속 걷다보니 노동당사가 보인다. 반갑다. 저곳에 가서 휴식을 해야 하고 간식도 먹을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가볍다. 노동당사에 도착하니 벌써 시간이 오후 5시가 넘어가고 있어 오랫동안 쉴 수도 없다 서쪽으로 지는 빛을 받은 노동당사는 촬영하기에 좋은 시간대였다. 사진 몇 장 촬영하고 동성(구 철원)을 향해 열심히 걷는다. 동성은 고향 같은 곳이다. 우리 집이 지척인데 오늘은 이곳에서 숙박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