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절지도사, 경기도문화관광해설사, 한국관광공사 관광정보지킴이, 성균관청소년인성교육 현장교실 강사, 사랑의 빵 봉사회 ‘여울회’ 총괄, 포천문화원 회원, 성균관여성유도회 포천시회 회원 등…. 박영자(52) 예절지도사는 이렇듯 많은 이름으로 불리우며, 문화관광 분야 또는 지역봉사 활동에서 보람을 찾고 있다.
박영자 예절지도사는 지난 2000년부터 서울의 성균관을 다니며 틈틈이 공부, 예절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해 포천시자원봉사센터, 포천고, 포천중, 포천도서관, 갈월중, (사)함께하는 다문화네트워크, 포천시청, 청소년교육문화센터, 경복대학 관광교육원, 신포천어린이집, 선단리 화목교회 등 관내 각 기관 및 시설에서 두루 강의를 가지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지난 2005년부터는 문화관광해설사로도 두루 활동하며, 지난 2009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전국박람회에서 ‘포천의 유적과 관광지 여행’을 주제로 강연을 가지고, 경복대학 최기종 교수와 함께 관광학부 항공관광전공 학생들과 용연서원 등 포천 문화재에서 현장교육을 펼치는 등 포천시 홍보에 매진하고 있다.
박영자 예절지도사는 지난 2006년 임기만료 6개월을 남기고 홀연히 작고한 故김진동 전 포천예총 회장(서예가)의 아내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서울에서 살다 25세 때 당시 일동면 기산리 청계낚시터를 운영하고 있는 남편에의 예술적 재능에 반해 포천으로 시집오게 된 것. 남편과의 나이차이는 무려 22년으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사리 이뤄진 혼사였다.
“나이 많은 남편이기에 언젠가는 먼저 가리라 늘 생각했지만, 지병이 있었어도 가장으로 항상 꿋꿋하던 남편이 뇌졸중으로 떠나고 나니 내 자신이 경제적으로 도움 될 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풍족하지 않더라도 현재 내가 하는 일들이 평생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꼭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이를 바탕으로 열심히 살아갈 생각입니다.”
박영자 예절지도사는 생전 김진동 회장의 뒷바라지로 기사와 비서를 자처, 포천문인협회·포천국악협회 발족 등에 힘을 보태며 포천예총 설립에도 많은 노력을 쏟았다.
그때 당시 4년간 송장희 선생에게 배운 경기민요로 나지르마을, 정혜원 등 ‘우리소리 봉사’를 현재까지 하고 있기도 하다. 국악봉사 뿐만 아니라 대진대에서 제과제빵을 배워 여울회를 조직해 총괄을 맡아 현재까지 한 달에 한 번씩 관내 복지시설 11곳에 빵을 후원하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
박영자 예절지도사는 “대학원을 마치고 학원 강사를 하며 임용고사 준비를 하는 딸과 대학 4학년인 아들 등 남매들이 이젠 다 컸다”고 뿌듯해하며 “내 남은 생은 보람 있는 일을 하며 사회에 조그만 일이라도 꾸준히 일조하는 것이 나의 소박한 희망”이라고 말했다.
ⓒ (주)포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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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자 예절지도사는 대진대에서 제과제빵을 배워 여울회를 조직해 총괄을 맡아 현재까지 한 달에 한 번씩 관내 복지시설 11곳에 빵을 후원하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