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농 이해조 선생기념사업회(회장 홍을표)와 한국연극연출가협회(회장 김성노)는 지난 7월 5일 오후 2시 서울 동숭동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이해조와 한국연극”을 주제로 창작포럼을 개최했다.
“자유종 100년제”의 일환으로 이해조의 ‘자유종’을 연극화하여 공연하는 행사기간에 실시된 이날 포럼은 “이해조의 현재적 의미”를 주제로 최원식 교수(인하대)가 기조연설을 했으며, 제1토픽 “이해조와 이인직-‘자유종’과 ‘은세계’의 비교”는 홍을표 회장이 발표했다. 제2토픽 “자유종 연출노트”는 이인수(현대버전), 박정희(원전) 교수가 각각 발표했고, 제3토픽 “이해조 문학과 연극”은 김석만 교수(서울시극단 단장)이 맡았다.
최원식 교수는 기조연설에서 우리 근대문학의 새로운 축을 “이인직에서 이광수로가 아니라, 이해조에서 염상섭, 박태원으로 이어지는 계선으로 잡아야 우리 문학의 족보가 바로 선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특히 “서울 중바닥 사람들의 경아리말과 세태를 핍진하게 그려낸 ‘구마검’(1908)은 이미 염상섭과 박태원을 선취한다”고 평했다.
최 교수는 한국소설의 면면한 ‘불구의 삼각관계’로부터 이탈한 ‘산천초목’(1910), 멕시코 노동이민의 참상을 그린 ‘월하가인’(1911), 이른바 동학란을 욕망 실현의 계기로 활용하는 어느 양반출신의 사기꾼의 행적을 생생하게 그린 ‘화의혈’(1911), 그리고 한명회를 축으로 세조정변을 도덕적으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투쟁을 향한 인간들의 투쟁이란 눈으로 접근한 ‘한씨보응록’(1918)은 이후 이광수와 김동인으로 이어지는 우리 근대역사소설의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홍을표 회장은 주제 발표에서 이해조의 ‘자유종’과 이인직의 ‘은세계’의 비교를 통해 이해조 문학의 위상을 정립하고자 했다. 그는 이 발표에서 ‘자유종’의 신문연재 시기가 1908년 초라는 사실을 새롭게 밝히고, 국치 직전 국민연설회 사건으로 인한 이해조와 이인직의 정치적 갈등관계가 1910년 ‘자유종’ 단행본 출간의 계기가 되었음을 밝혔다.
홍 회장은 “1908년의 정치적 현실에 대응한 ‘자유종’과 ‘은세계’의 치열한 대결에서 당대에는 ‘은세계’가 이겨 속국이 되었지만 결국 민족해방과 국제정세의 거대한 흐름에 따라 일제는 패망하고 ‘자유종’이 다시 울렸다”고 결론짓고, “‘은세계’의 주인공 옥남의 고압적인 연설이 희화화되고 ‘자유종’의 토론자 신설헌의 페미니스트적인 정론이 우리 시대의 ‘자유종’으로 다시 울렸다”고 말하며, ‘자유종’의 가치가 일제의 동토를 견디고 이겨 나와 우리 문학의 기반이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 이번 ‘자유종’ 공연“이라고 평가했다.
이인수 교수는 ‘2010자유종’ 연출노트에서 “오래 전 이해조가 여성 인물들의 목소리를 빌려 말했던 대한민국의 영광스런 독립을 가로막고 있는 사회의 폐단들이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고 전제하고, “우리가 여전히 선진 강대국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의 것에 대한 자만심과 수치심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박정희 교수는 ‘1910자유종’ 연출노트에서 “양반집 여자들은 마이너리티로서, 망국민으로서 여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며 망국민을 극복하고 역사와 사회의 주체로서 거듭나려는 인식 투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고, 이것이 이해조 문학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김석만 교수는 ‘화의혈’(1911)을 분석해 이해조 문학의 연극화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리고 ‘화의혈’이 ‘춘향전’을 패러디한 작품이라는 전제에서 두 작품을 비교해 극적 요소를 분석해 냈다. 그는 ‘자유종’에서 판소리를 비판한 대목을 거론하며 1910년 이후 매일신보에 연재한 판소리계 소설 창작 의도를 논증했다.
판소리계 소설의 연재의 변으로 ‘광대들에 의해 구전되는 천박함을 교정하고, 전통을 발굴하고 옛사람의 좋은 뜻을 되살려야 한다’는 이해조의 언급을 인용했다. 또한 임성구의 혁신단을 중심으로 우리 연극사를 새로 정립하려는 시론을 선보였고, 천주교 뮈텔 주교의 일기를 통하여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여 연극 공연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요컨대 그는 1908년 원각사에서 공연된 ‘은세계’를 우리 연극의 출발로 보는 기존의 시각을 부정하고 임성구의 혁신단을 그 대안을 삼는 획기적인 시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