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학교에서 2009년 제3차 성취도 평가 시험을 봤다. 그리고 오늘은 토요 휴업일이어서 하루 종일 집에서 딩굴딩굴 하며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어버릴 계획도 세웠었다. 그런데 아침 일찍 엄마께서 “지연아, 들에 추수는 다 마쳤겠지? 어디든 논에 가서 볏짚을 좀 잘라오게 엄마랑 함께 다녀오자.” 하셨다.
“볏짚은 뭐 하시게요?” 하고 여쭈었더니 “응, 볏짚을 아래에서 10~15cm정도 잘라서 말린 후에 겨울에 보리차 끓여 먹듯이 조금씩 꾸준히 끓여 먹으면 중풍 예방에 좋다고 하더라. 엄마도 중풍이 올까봐 걱정돼서 그래.”하셨다.
얼마 전에 엄마는 등은 물론이고 온 몸에 부황을 뜬 자국이라고 하시며 동그란 멍 자국을 만들어 가지고 오셨다. 오래 전부터 눈 위부분이나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더니 오늘은 손이 마비되는 증상이 생겨서 아는 아줌마가 급하게 부황을 떠준 것이라고 하셨다. 그때는 걱정이 돼서 “엄마 나랑 병원에 가요. 그러다 많이 아프면 어떻게 해요.” 하며 걱정했었는데, 어느새 잊고 말았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엄마께서 약재를 구하러 가시는데 함께 가기로 했다.
신북면 쪽으로 차를 타고 달리며 산과 들을 보니 얼마 전에 내가 봤던 산과 들이 아니었다. 그때는 누렇게 익어가는 논의 벼들과 푸른 산이었는데 오늘 본 산은 온통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예쁘고 논에 있었던 벼들은 그 사이에 어디로 갔는지 논바닥에 밑 둥만 남아있었다. 내가 시험공부 한다고 꼼짝하지 않을 동안 계절이 저 혼자 훌쩍 가 버렸다. 차를 타고 한참을 돌아다닌 후에 우리는, 완전히 누렇게 물든 황금벌판에서 농기계로 늦은 추수를 하는 농부 아저씨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엄마께서 볏짚을 얻고 싶다고 하시자, 흔쾌히 허락하시며 얼마든지 가져가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논에는 메뚜기 등 논에 사는 생물들이 보이지 않았다. 농약을 뿌렸다는 증거이다. 얼마 전 TV에서 친환경으로 농사지었다는 논에서, 팔딱팔딱 뛰는 메뚜기를 잡으며 즐거워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봤었는데 이 논에는 거미줄도 메뚜기도 없었다. 그래서 아저씨께 여쭈어 보았더니, 농사를 지을 때는 벼멸구나 잎 짚 무늬 마름병이나 나방 등 여러 가지 해충들이 많이 생기고 풀도 나와서 농약을 뿌리지 않으면 농사짓기가 어렵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엄마는 가지고 간 가위로 볏짚 아래 부분을 열심히 잘라서 비닐에 담으셨다. 옛날에는 농약을 뿌리지 않고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어서 볏짚도 민간요법 약재로 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가져온 볏짚은 농약을 잔뜩 머금고 있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 엄마가 볏짚을 삶아서 드시면 그 속에 숨어있던 농약 성분들이 엄마 몸속으로 들어가게 될까봐 걱정된다.
엄마께 가져가지 말고 병원에 다니자고 말씀 드렸지만 결국 볏짚은 우리 집에까지 오고 말았다. 엄마는 나에게, 지나치게 걱정이 많은 것도 병이라고 하시며 먹어도 괜찮다고 하셨지만 아무래도 걱정되니 엄마 몰래 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