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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이야기=90] 진화중인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


윤우영 기자 / 입력 : 2009년 10월 18일
↑↑ 디즈니랜드
ⓒ (주)포천신문사
애니메이션의 황금기라고 부르는 1940년대가 지나가고 1950년대가 시작되면서 부터 디즈니는 이미 애니메이션의 정점에서 하락을 길을 걷고 있었다. 물론 애니메이션이란 장르 자체가 이미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던 시기였다. 여기에는 미국사회의 엄청난 변혁이 애니메이션의 쇠퇴를 종용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더욱이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애니메이션 뮤지컬 시장은 더욱 처참했다. 1960년대에는 불과 3편 밖에 제작되지 않았다. 급격히 TV가 보급되면서 점차 영화관이 사양길을 걷게 되자 본격적인 TV용 애니메이션 시대가 열리게 되었는데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제작이 현저하게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디즈니사의 입장에서 예전처럼 많은 인력과 돈을 들여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은 사업적으로 큰 의미가 없었다. 초창기처럼 MGM이나 워너브라더스를 비롯해서 경쟁자가 많아 최고가 되기 위한 동기가 마련되기도 했지만 TV의 출현은 애니메이션 사업에 너무나 큰 장벽이 되었다. 디즈니사는 한편으론 디즈니랜드 사업에 열중했고 특히 TV 사업에 뛰어들면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의 질은 현저하게 떨어져만 갔다.

텔레비전에 열중하다보니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장편 애니메이션의 경우 그 제작단가를 줄이기 위해 특수기법이 동원되기도 했다. 물론 임시방편으로 개발한 특수기법은 애니메이션 제작비용을 줄여주기도 했고 관객에게는 한 순간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으나 1940년대의 작품에 비해 완성도와 깊이가 부족하다는 것을 오래도록 감출 수는 없었다.

최근 영화에서 컴퓨터 그래픽(CG)이 많이 사용되면서 제작단가가 줄어들고 외형적으로 화려해진 면이 있지만 과거 수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하며 현장촬영을 했던 블록버스터에 비하면 뭔가 허전하고 깊이가 부족한 느낌을 받는 것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애니메이션에 대한 월트 디즈니의 열정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 월트 디즈니<1901.12. 05 ~ 1966. 12. 15>
ⓒ (주)포천신문사

종종 월트 디즈니는 1938년에 만들어진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를 보면서 한탄하곤 했다고 한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에 비해 현저하게 수준이 떨어져 있는 당시의 디즈니사의 능력을 개탄하면서 종종 애니메이션의 황금시대의 재현을 꿈꾸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사회의 변혁과 시대의 흐름에 따른 시장의 변화는 디즈니의 열정도 막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많은 영화사들이 몸집을 줄이기 위해서 애니메이션을 포기했다. MGM에 이어 워너브라더스가 1953년에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문을 닫았다.

하지만 디즈니사는 최소한 회사의 소명인 애니메이션의 명맥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경쟁사들이 문을 닫은 이상 더 이상의 최고가 되려는 목적의식조차 사라졌고 홀로 외롭게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애니메이션의 황금시대가 저물며 디즈니의 명성도 전설로 남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

디즈니 장편 뮤지컬 애니메이션의 몰락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더욱 처참한 길을 걷게 되는데 뮤지컬 시장의 종말이라고 할 만큼 현저하게 몰락하고 있었다. 더욱이 월트 디즈니의 사후에는 절대 절명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앞으로는 더 이상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물론 1970년대는 열악한 제작편수에도 불구하고 기술개발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선구적인 마인드도 있었지만 그 역시 제작단가를 줄이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했다. 그 쇠퇴의 흐름은 1980년대에도 이어져갔다. 하지만 1980년대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디즈니의 부활을 예고하는 작품이 만들어졌다.

그 신호탄을 올린 작품이 다름 아닌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 (1989)>였다. 디즈니는 인어공주가 물방울로 사라져가는 원작의 결말을 과감하게 버리고 현대적인 재해석으로 마지막에 왕자와 결합하게 만들었다. 원작의 커다란 훼손으로 지탄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그 결과 처음으로 개봉되었을 때 <인어공주>는 미국에서만 84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전 세계적으로 계산하면 9900만 달러에 육박하는 엄청난 흥행 성공이었다. 국내에서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는데 특히 극중의 뮤지컬 노래인 “언더 더 씨(Under the Sea)”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면서 디즈니사로서는 커다란 경사를 맞이했고 “파트 오브 유어 월드(Part of Your World)"와 함께 모두가 애창하는 히트곡이 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과거 디즈니의 명성이 재현될 만큼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명작들이 만들어졌다. 흔히들 이 시기를 ‘디즈니 르네상스’라고 한다.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 1991)>를 비롯해서 <알라딘(Aladdin, 1992)> 등이 박스오피스를 강타하며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였고 디즈니 장편 뮤지컬 애니메이션의 인기는 <라이언 킹(The Lion King, 1994)>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했다. <라이언 킹>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Hamlet)>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디즈니 르네상스’의 대표작으로 불린다.

<니모를 찾아서(Finding Nemo, 2003)>가 개봉되기 전까지 역대 애니메이션 영화중에서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며 전 세계에 걸쳐 무려 7억 830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물론 디즈니와 픽사(Pixar)가 함께 만든 <니모를 찾아서>가 전 세계에 걸쳐 8억 6400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의 흥행 애니메이션의 왕좌를 차지하곤 있지만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라이언 킹>은 작품성이나 흥행성 면에서 손으로 그린 클래식 애니메이션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라이언 킹>은 특히 1997년에 무대뮤지컬로 만들어져 더욱 인기를 얻고 있는데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린 이래 현재까지도 장기공연 되고 있으며 전 세계에 걸쳐 공연되기도 했다. 2009년 10월 11일 기준으로 4941회 공연을 기록 중이며 이 기록은 역대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 9위의 자리에 올라있는 것으로 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언제까지 장기공연이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후 디즈니사의 장편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은 계속 이어져 갔다. <포카혼타스(Pocahontas, 1995)>, <노트르담의 곱추(The Hunchback of Notre Dame, 1996)>, <헤라클레스(Hercules, 1997)>, <타잔(Tarzan, 1999)> 등 고전적인 작품을 소재를 택해 성공을 거두었고 <아틀란티스(Atlantis: The Lost Empire, 2001)>, <릴로와 스티치(Lilo & Stitch, 2002)> 그리고 최근의 <볼트(Bolt, 2008)>와 곧 개봉될 <공주와 개구리(The Princess and the Frog, 2009)>에 이르기 까지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중이다. 2013년에 개봉될 <눈의 여왕(The Snow Queen)>을 비롯해서 앞으로 제작될 작품들도 이미 기획단계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장편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향한 디즈니의 열정과 전설은 계속될 전망이다.

윤우영 (대진대학교 교수, 연출가)
윤우영 기자 / 입력 : 2009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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