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으로 지난 7월 22일 포천시 소흘읍 계약직 공무원에 특별 채용돼 화제가 됐던 김선화(34)씨. 김씨는 북한 함경남도에서 고등학교와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4년간 사무직으로 일하다 중국을 통해 남한사회에 들어와 지난 2008년 1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여덟 살 짜리 아들을 중국 연변에 사는 시부모에게 맡기고 1년 먼저 포천에 정착한 조선족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그는 소흘읍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의 애로사항 처리 및 민원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소흘읍 공무원 생활 73일째 되던 10월 5일 오후 김씨를 만났다.
- 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요? “지난해 5월초 포천에 온 이후 주로 일당을 받고 식당일도 하고 공장일도 했죠.”
- 포천시 소흘읍 공무원으로 특별 채용이 결정됐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면접을 보고나서 특별채용하기로 했다는 전화를 받고 마치 천하를 얻은 기분이라고 할까요? 남한 사회에서도 성공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겼어요.”
- 북한에서도 사무직 일을 했는데요. 남한에서 막상 행정업무를 해보니 어떻게 다르던가요? “1990년대 초 북한에서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경리로 4년 정도 일했어요. 시대가 변한 것도 있겠지만 남한의 사무직 일은 너무 달라요. 우선 모든 일을 컴퓨터로 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서툴고 힘들어서 포기하려고도 했어요. 단계별로 결재를 받는 것도 북측하고는 많이 다르고요. 일이 많아서 힘든 게 아니라 컴퓨터 실력이 부족하고 적응이 안돼 힘들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업무에 적응이 된 편이죠.”
- 소흘읍 주민생활과에서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소흘읍에는 저와 같은 새터민이 187명이 있습니다. 새터민들의 거주실태를 파악하고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지원해주며 상담하는 일을 합니다. 무한돌봄 사업인 위기가정을 지원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걸려오는 전화로 상담하거나 직접 방문해 실태를 파악하고 상담하는 일이 많습니다.”
- 가장 힘들 때는 언제고, 보람 있을 때는 언제인가요? “새터민들은 죽음을 넘나들며 도피하고 쫓기고 온갖 고초를 겪으며 제3국 등을 경유해 남한으로 왔습니다. 그런 만큼 매우 예민해져 있죠. 여전히 남한사회에 적응을 잘 못하거나 취업이 안돼 힘들게 살아가는 현실을 보면 매우 안타깝죠. 같은 처지에서 새터민들의 애로를 상담해주고 고민을 해결해 주었을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북한은 정확히 하루 8시간 기준으로 일하지만 남한의 기업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다릅니다.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기에 생산성을 높이려다보니 적응하기 어려운 점도 있을 겁니다. 새터민들은 물질적인 지원보다 빨리 남한사회에 적응하기를 원하거든요. 일당을 받는 단순한 일보다 직업훈련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 앞으로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 “소흘읍 공무원으로서 새터민들이 남한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최우선이죠. 포천신문도 지역을 대표하는 언론으로서 새터민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취업도 지원해줬으면 해요. 개인적으로는 배울 것이 많아 학원도 많이 다니고 싶고, 훗날 기회가 된다면 조그마한 꽃가게를 운영하고 싶어요.”
↑↑ 포천시 소흘읍 주민생활지원과에서 근무하는 김씨는 새터민들이 체계적인 직업훈련을 통해 취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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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22일 북한이탈주민으로서 경기도내 지자체 최초로 계약직 공무원에 임명된 김선화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