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세출의 뮤지컬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Cameron Mackintosh, 1946∼) 쇼 비즈니스 세계에서 뮤지컬 제작자(프로듀서)는 돈을 얼마나 벌수 있을까?
할리우드와 비교해서 흥행수입이 보잘 것 없었던 뮤지컬 시장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불세출의 뮤지컬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Cameron Mackintosh, 1946∼)에 의해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가는 황금시장이 되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흥행수입을 많이 올린 영화 <타이타닉(Titanic)>과 비교해 보면 가히 그 성공은 현재의 쇼 비즈니스의 세계를 대변해 주는 듯하다.
영화 <타이타닉(Titanic)>은 1997년에 개봉되어 약 5억 7천만 달러(약 6,840억 원)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물론 시리즈가 아닌 개별 작품으로 조사된 것이며 비공식적인 데이터이다. 반면에 카메론 매킨토시가 제작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의 흥행수입은 놀라울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다.
<타이타닉> 총수입의 20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1986년에 영국에서 초연된 이후 현재까지 세계 최장기 공연을 기록하며 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공연이 지속되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은 미국의 브로드웨이에서만 8,910회가 넘는 공연을 하고 있는 중이다. 비공식적인 집계이지만 2007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50억 달러(약 6조원)가 넘는 관객수입을 올렸다고 하는데 이 수입은 어느 면으로 보나 불가사의라고 할 만큼 엄청난 액수이다. 더욱이 아직도 미국과 영국에서는 언제 막이 내릴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라니 그 기록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세계적인 관심사이기도 하다.
카메론 매킨토시(Cameron Mackintosh)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이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한 뮤지컬 <레 미제라블>, <캣츠>, <미스 사이공>등을 제작하였다. 뮤지컬 역사에서 카메론 매킨토시만큼 혼자서 국제적, 상업적, 예술적 업적을 모두 성취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의 성공을 대변해 주듯이 미국의 유력지 뉴욕 타임즈는 매킨토시를 일컬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영향력이 있으며, 강력한 연극 제작자" 라고 평했다.
8살 때부터 뮤지컬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매킨토시는 학위를 따기 위해 대학에서 무대감독(stage management course)을 전공하게 된다. 하지만 공부에 회의를 느끼고 일 년 만에 대학을 그만두게 된다. 실질적인 작업에 참여하고 싶은 열망에 비록 소품을 정리하는 일이었지만 웨스트엔드에서 처음으로 뮤지컬을 접하게 된다.
5개월 동안 1주일 8회 공연에 7파운드를 받았다고 하는데 아침에 드레스 룸의 금속기둥이나 카펫 청소를 하는 대가로 7파운드를 더 벌었다고 한다. 비록 허드렛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의 찬란한 뮤지컬 인생이 그 때부터 시작되었고 1980년대에는 세계 뮤지컬 흥행기록을 갈아 치우는 세계적인 제작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 공으로 영국에서는 비틀즈 이래로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예술인이 되었고 뮤지컬계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1996년에 오너 리스트(Honours List)에 포함되어 영국 왕실에서 수여하는 경(Sir)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매킨토시가 제작한 수많은 작품들 중에는 비록 <모비 딕(Moby Dick)>, <마틴 기어(Martin Guerre)>, <이스트위크의 마녀들(The Witches of Eastwick)>과 같은 성공적이지 못한 뮤지컬도 있었으나 그 작품들조차도 평균 1년이 넘는 공연을 했다. 그의 성공적인 작품들은 대부분 1980년대에 제작된 것인데 1970년대까지 침체된 뮤지컬 시장에 폭풍과도 같은 흥행바람을 불러일으켰다. 1980년대 이전까지 영국의 뮤지컬 시장은 예외 없이 미국에서 수입한 브로드웨이 뮤지컬로서 채워졌었다.
하지만 매킨토시는 영국의 뮤지컬이 미국으로 역수출되는 시장전환을 가져다주었다. 또한 침체되어 있던 브로드웨이에 활기를 주면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작곡가 앤드류 로이트 웨버와 함께 뮤지컬을 영국의 가장 자랑스러운 문화적 수출품으로 만들었다.
1980년대에 카메론 매킨토시가 제작한 뮤지컬 중에서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1986)>, <캣츠(Cats, 1981)>,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1985)>은 모두 세계 최장기 공연 1위, 2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미스 사이공(Miss Saigon)>은 1990년에 초연되었지만 역시 세계 최장기 공연 10위에 랭크되어 있다. 이들은 또 다른 기록을 지니고 있는데 첫 공연의 막이 오르기 직전까지 판매된 예매티켓의 액수도 상상을 초월한다.
브로드웨이에서만 <레미제라블>은 1,200만 달러(약 144억 원), <오페라의 유령>은 1,900만 달러(약 228억 원) 그리고 <미스 사이공>은 약 4,000만 달러(약 480억 원)의 티켓을 공연 전에 팔았다. 매킨토시의 이러한 놀랄만한 업적 뒤에는 물론 훌륭한 지인들이 포진해 있었으며 그들과의 협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매킨토시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매킨토시는 능력 있고 창조적인 사람들과 가깝게 작업을 했는데 팀을 꾸리는데 있어서 상당한 재능이 있었다. 그의 성격은 마치 섬광처럼 불같다고 전해지는데 한편으론 온화한 설득력도 있어 매우 거칠지만 일의 추진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고 한다. 그동안 그가 함께 작업한 연극인들은 모두 당대 최고의 작곡가이거나 연출가들이었으며 또한 무명에서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들어준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 연출가 트레버 넌(Trevor Nunn) 그리고 해롤드 프린스(Harold Prince) 등은 당시 최고의 작곡가와 연출가들이었으며 <레미제라블>과 <미스 사이공>의 작곡가 쇤베르크(Claude-Michel Schönberg)와 작사가 알랭 부빌(Alain Boublil)은 매킨토시와의 작업을 통해 최고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매킨토시는 매우 사교적인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쇼 비즈니스를 하다보면 상당히 많은 모임이나 파티에 참석해야 할 때가 많은데 매킨토시는 공적인 생활을 즐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반면에 한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많은 시간을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인 생활을 위해 할애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한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제작자로서의 매킨토시에 대해 그저 돈 버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제작자가 아닌 자신이 제작한 작품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많은 애착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 말은 매킨토시가 평생토록 가슴에 지니고 있는 좌우명과 일치한다. ‘관객의 취향보다도 자신의 취향에 가장 충실하고 자신이 최선을 다해 책임질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연극 매니저(a theatrical manager)였던 찰스 코크란(Charles Blake Cochran, 1872–1951)의 자서전 <어 쇼맨 룩스 언(A Showman Looks On, 1945)>에 나오는 말인데 제작자가 항상 자신의 취향에 가장 충실할 때 다른 사람도 감동한다는 충고로 쇼 비즈니스계의 종사자 모두가 한 번쯤 새겨보아야 할 말이라고 생각된다.
카메론 매킨토시의 행보는 2009년까지도 뮤지컬 <올리버!(Oliver!)>로 이어지고 있다. 어느 덧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1980년대처럼 다시 한 번 명작들을 터트려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며 또 다른 매킨토시의 등장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