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브로드웨이나 할리우드의 뮤지컬 시장은 다른 장르에 비해 훨씬 큰 공황을 가져왔다. 관객이 감소하는 원인으로 텔레비전 보급이 결정적이었지만 히피문화와 베트남 전쟁 그리고 대통령 암살 등 미국사회의 엄청난 변혁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장편 애니메이션의 경우도 1960년대에는 불과 3편 밖에 제작되지 않았다. 급격히 TV가 보급되면서 점차 영화관이 사양길을 걷게 되자 본격적인 TV용 애니메이션 시대가 열리게 되었는데 TV라는 매체의 특성상 비용을 절감하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1초에 들어가는 프레임수를 줄이는 방식) 기법이 사용되어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제작이 현저하게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고의 흥행 기록한 ‘로빈훗(Robin Hood)’
전반적으로 1960년대의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 그리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뮤지컬은 사양길로 접어든 시기였다. 더욱이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더욱 처참한 길을 걷게 되는데 뮤지컬 시장의 종말이라고 할 만큼 현저하게 몰락하고 있었다.
TV의 보급 이외에도 몰락을 가져온 가장 큰 이유로는 돈을 쥐고 있던 투자자들이 엔젤투자 쪽에 시선을 돌렸기 때문이었다. 엔젤투자란 보통 돈 있는 개인들이 혼자서 혹은 함께 모여서 투자모임을 결성하고 벤처기업이나 새로 창업하는 회사에 투자하면서 주식지분으로 대가를 받는 형태를 말한다.
위험성이 많은 투자형태였지만 1970년대 투자자들은 연극이나 영화에 투자하는 것보다 엔젤투자 쪽을 더 선호했다. 마치 현재 우리나라의 영화투자자들이 영화투자에서 손을 떼고 다른 방향으로 투자를 선회하면서 영화시장을 공황상태로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결국 1970년대 들어서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는 20세기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정글북(The Jungle Book, 1967)>을 끝으로 디즈니사의 창업주인 월트디즈니가 죽음을 맞이하자 디즈니 애니메이션 뮤지컬도 절대 절명의 위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여러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움과 변화를 추구하는 디즈니의 선구적 마인드는 계속되고 있었다. 1960년대에는 단 3편만 제작되었지만 1970년대에는 그나마 4편으로 증편되었는데 월트 디즈니의 사후에도 디즈니사는 건재함을 과시하면서 제작된 작품들의 작품성도 다른 시대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스무 번째 작품인 <아리스토캣(The Aristocats)>이 1970년에 개봉되었다. 그 후 <로빈훗(Robin Hood, 1973)>과 <푸우의 대모험(The Many Adventures of Winnie the Pooh, 1977)>이 개봉되었으며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23번째 애니메이션 <버나드와 비앙카의 구출 대모험(The Rescuers, 1977)>이 1970년대의 대미를 장식했다.
<아리스토캣(The Aristocats)>은 극 전반에 걸쳐 재즈 음악이 사용되고 있다. 20세기 초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풍요로운 가정환경에서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난 귀족 고양이 더치스 가족이 뜻하지 않게 음모에 휘말렸다가 다시 귀환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귀족생활을 즐기던 더치스 가족은 여정 중에 여러 평범한 동물들을 만나게 되는데 서로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로빈 훗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하고 잘 알려진 캐릭터로 디즈니사도 1973년에 로빈 훗의 전설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개봉되자마자 <로빈훗(Robin Hood)>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상 가장 큰 박스 오피스의 성공을 가져다주었는데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에서 최고의 액수인 9백만 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다 주었다. 이는 1973년 이전까지 개봉되었던 작품들을 통틀어서 최고의 흥행기록이었다.
열악한 제작편수 불구 선구적 마인드 지속
‘곰돌이 푸우(Pooh Bear, 원제: "Winnie-the-Pooh")’는 1926년에 발표된 밀른의 동화 속 주인공이다. 1926년 《곰돌이 푸우는 아무도 못 말려(Winnie-the-Pooh)》가 출간된 이후, 곰돌이 푸우와 숲 속 친구들은 어린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가 되었다.
장난감에서부터 학용품과 생활용품까지 귀여운 캐릭터 곰돌이 푸우는 현재까지도 아이들에게 아주 친숙하다. 곰돌이 푸우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1977년에 만들어진 장편 애니메이션 <곰돌이 푸우-오리지널 클래식(The Many Adventures of Winnie the Pooh)>은 바로 《곰돌이 푸우는 아무도 못 말려》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TV 속에서 아기 곰 푸우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는데 주인공 푸우는 국제연합(UN)으로부터 우정의 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아기 곰 푸우의 기원은 이렇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당시 캐나다 해군 소속 군인이 부대 안에서 기르던 곰을 동물원에 기증했다. 그는 자신의 부대 이름인 '위니 페그'를 따서 그 곰에게 '위니'라는 이름을 붙였다.
작가 알렉산더 밀른(Alan Alexander Milne)과 그의 아들 크리스토퍼는 동물원을 자주 찾았고, 크리스토퍼는 유독 위니를 좋아했다. 그리고 알렉산더 밀른(Alan Alexander Milne)은 위니를 모델로 아들에게 잠자리에서 읽어줄 동화를 썼다. 그 뒤 친구인 일러스트 작가에게 삽화 그림을 부탁하고 《위니 더 푸우(Winnie-the-Pooh)》라는 책으로 펴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70년대의 마지막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버나드와 비앙카의 구출 대모험>은 <곰돌이 푸우-오리지널 클래식)>이 개봉되고 나서 3개월 후에 곧바로 개봉되었다. 극중 주인공인 생쥐 버나드와 비앙카의 직업은 유엔 본부의 지하실에 자리 잡은 국제 생쥐 구조대의 비밀첩보 요원이다. 어느 날 생쥐 구조대에 못된 마담 메두사에게 시달림을 받고 있던 고아 소녀 페니가 빈 병 속에 담아서 보낸 구조 요청 편지가 도착하면서 구출작전이 펼쳐진다.
국내의 어린이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고 다른 작품에 비해 덜 알려진 애니메이션인데 작품성으로 볼 때 디즈니사의 최고의 성공작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1967년 <정글북>에서부터 1980년대 <인어공주>까지를 통틀어서 첫 번째 애니메이션의 성공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영화는 디즈니사가 최고로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 중의 하나로 제작기간 4년 동안에 40명의 애니메이터들을 포함해서 250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했으며 33만여 장의 그림과 1039장면들 그리고 14시퀀스로 구성되어 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디즈니의 영화들의 트렌드는 코미디였다.
이전까지 <밤비>와 <덤보>와 같은 드라마와 스토리가 중요시되었던 작품들보다는 코미디를 선호했다. 하지만 <버나드와 비앙카의 구출 대모험(The Rescuers)>은 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의 회귀를 알리는 첫 번째 작품이었으며 1980년대 이후 디즈니의 새로운 도약의 시대를 열어준 선구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의 선구성중의 하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처음으로 스틸사진위에서 카메라 움직임을 실행한 것이었다.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의 뮤지컬이 1960년대를 거쳐 1970년대까지 위기를 맞이했던 것처럼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1960년대에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더욱이 월트 디즈니의 사후에는 절대 절명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는데 1970년대는 열악한 제작편수에도 불구하고 선구적인 마인드는 지속되고 있었으며 1980년대 이후 디즈니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던 시대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