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동 회장님! 저에게는 형님이셨습니다. 제가 6월9일 잠자리에 들려할 때 ‘강수동 회장님 별세’라는 메시지를 보고 너무나 놀랍고 안타까웠습니다. 몇 달 전부터 궁금해서 전화를 들였더니 받지 않으셔서 안좋으시구나 생각 했었습니다.
그런데 10여일 전이던가 제 친구에게서 회장님이 건강이 좋아 지시어 이제는 함께 이야기도 할 수 있다고 하며 찾아가 뵈라고 하여 참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기뻤습니다. 그래서 김중기 안경박사 사장과 함께 이번 주 내에 찾아뵙기로 약속을 잡아 놓았는데 이게 웬 청천 벼락입니까. 일찍 찾아뵙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쉽고 후회막급입니다.
저에게는 친형님이 없어 어떤지는 몰라도 친형이라도 이렇게 의지가 되고 든든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무슨 일이 생기면 상의를 드렸고 아쉬울 적에도 말씀을 드리면 “알았어. 내가 도와줄 게 염려 말아” 하셨습니다.
제가 민주평통자문회의 회장에 취임하였더니 형님은 크게 기뻐하시며 큰 화환을 보내시어 축하해 주셨습니다.
“민주평화통일의 길”이라는 책을 낼 때도 부족함을 채워 주셨습니다. 제가 문인협회 회장이 되니까 형님께서는 크게 함박웃음을 웃으시며 기뻐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부족한 예산으로 포천문학을 만들 때도 도와주시며 “매년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해 주시던 말씀은 지금도 귀에 쟁쟁히 들려옵니다.
형님! 저에게는 청천벽력입니다. 내 삶에서 형님의 그 큰 자리를 무엇으로 채운단 말입니까. 이 땅에서의 형님의 그 큰 자리는 무엇으로 채운단 말입니까. 그 많은 재원을 투자하신 가난한 자들을 위한 동천장학회는 어쩝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형님의 그 큰 자리는 채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이던가. 형님과 박윤국 시장님과 나 세 사람이 포천문화원 발전을 위해 대화하고 설득하고 합의했던 그 과정과 장면이 떠오릅니다. 치열했던 문화원 이사회의 반목에서는 부원장이신 형님께서 나를 슬며시 부르시어 “이 이사 이런 발언을 좀 해주어” 하시면 저는 “왜 부원장님께서 직접 하시지요”라고 반문하고 “아니야. 이런 발언은 이 이사가 해야 해” 하시며 제게 지시하시면 저는 형님의 뜻을 따랐지요. 형님은 이렇게 조정역할에도 크게 능하셨습니다.
이런 역할은 누가 한단 말입니까. 저는 어제 저녁 텅 빈 성당에서 혼자 성체 앞에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눈물로 기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지금까지 형님의 사랑을 받은 제가 형님을 위해 할 수 있는 형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지막이요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강수동 회장님의 영혼을 위로해 주시고 품어 주소서그는 이 땅에서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의 형제요. 이웃이었습니다. 버팀목이요, 위로요, 친구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도구였다고 생각합니다. 주여! 평화를 주소서, 안식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