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역사에 있어서 1970년대의 가장 큰 화제는 천재적인 작곡가의 출현이었다. 그동안 전 세계의 뮤지컬 시장은 미국의 브로드웨이가 주도하면서 뮤지컬 작품들을 공급해 주는 것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물론 현재까지도 브로드웨이가 전 세계의 뮤지컬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1970년대는 경제적으로나 작품공급 면에서 브로드웨이가 엄청난 위기를 겪게 되면서 새로운 천재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단 한 사람의 작곡가가 전 세계의 뮤지컬계를 석권하기 시작했는데 그가 바로 영국출신의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 1948~)였다. 물론 1970년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웨버만을 거론하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데, 이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 당시 미국의 브로드웨이에도 이미 존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즈가 극찬했듯이 (미국) 뮤지컬 공연계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 스티븐 손드하임(Stephen Sondheim, 1930~)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1957>에서 작사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이후 1970년대에도 작사와 작곡을 겸하며 건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인의 시선으로 볼 때 영국인인 웨버는 흥행성면에서 그리고 형식적인 스타일에서 성공한 작곡가이고, 손드하임은 깊은 내용을 지니고 예술성에서 한층 뛰어난 인물로 평가하고 있는데 사실 그 평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더우기 작사가로 유명한 러너(A. J. Lerner)는 웨버의 뮤지컬들이 당세풍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아직도 웨버의 음악과 작품이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큰 인기를 얻고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영국에 대한 미국의 자존심어린 질투처럼 보인다. 관객의 취향에 따라 다소 지적이며 실험적이고 진지한 손드하임이 좋을 수도 있고 감미로운 음악과 화려한 무대를 더 좋아하는 관객이 있을 법 한데, 어쨌든 1970년대 전 세계의 뮤지컬계는 웨버와 손드하임이라는 두 거장의 출현만으로도 행복했던 시기였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1967년에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에 내보낼 음악을 작곡했다. 작사는 후일 웨버와 환상의 콤비를 이루었던 팀 라이스(Tim Rice)였다. 이 노래는 나중에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 1970)>(일명 슈퍼스타)의 한 멜로디가 되었는데 웨버와 라이스라는 드림콤비의 첫 출발작품이었다. 물론 슈퍼스타 이전에 두 콤비에 의한 뮤지컬 <조셉과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Joseph and the Amazing Technicolor Dreamcoat, 1968)>라는 작품도 발표되었었지만 브로드웨이를 비롯해서 전 세계 뮤지컬 시장을 강타한 최초의 작품은 슈퍼스타였다. 슈퍼스타는 극장에서 공연되기 이전에 컨셉 앨범으로 노래들이 먼저 음반시장에 출시되었고 음반이 성공하면서 곧바로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1975년에는 <지브스(Jeeves)>가 알란 액거번(Alan Ayckbourn)의 작사로 만들어졌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다음해인 1976년에 웨버는 다시 한 번 팀 라이스와 콤비를 이루었다. 그 뮤지컬이 바로 <에비타(Evita)>였다. <에비타> 역시 슈퍼스타처럼 컨셉 앨범으로 먼저 출시되었다. 아르헨티나의 영부인이었던 에바 페론을 다룬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는데 특히 던 크라이 포 미 아르젠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 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앨범의 히트와 함께 에비타는 즉시 뮤지컬로 만들어졌고 웨스트엔드에서 전무후무한 큰 성공을 거두면서 1979년에 미국 브로드웨이로 건너갔다. 이후 웨버는 1970년대의 마지막 작품으로 <텔 미 언 어 선데이(Tell Me on a Sunday, 1979)>를 작곡했다. 작사가 돈 블랙(Don Black)과의 콤비로 만들어졌는데 슈퍼스타나 에비타 만큼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스티븐 손드하임은 처음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1957)>의 작사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62년에는 작사와 작곡을 겸한 뮤지컬 <어 퍼니 싱 해픈드 언 더 웨이 투 더 포럼(A Funny Thing Happened on the Way to the Forum)>이 다수의 토니상을 수상하기는 했지만 평가는 그리 좋지 못했다. 그렇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손드하임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독창적인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연출가이며 프로듀서인 해롤드 프린스를 만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손드하임의 대담하면서도 다양한 뮤지컬들은 <컴퍼니(Company, 1970)>로부터 출발하고 있는데 <컴퍼니>는 일명 컨셉 뮤지컬(concept musical) 로 불리고 있다. 컨셉 뮤지컬은 사실 정의하기가 매우 어려운 용어이다. 대담하고 창의적인 면을 말하기도 하며 내용보다도 표현이 훨씬 더 중요한 뮤지컬을 일컫기도 한다. 컨셉 뮤지컬인 <컴퍼니>에서 플롯은 두 번째로 중요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에 대한 심리학적인 접근과 표현주의적인 요소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데 이는 기존 뮤지컬 코미디의 모든 룰을 깨트리는 것으로 종종 브레히트의 작품들과 비교되기도 한다. 음악적인 면에서도 손드하임이 <컴퍼니>에서 선보인 선구적인 작업은 마치 그리스 연극의 코러스 기능을 보여주는 듯하다. 또한 등장인물의 합창에서 볼 수 있듯이 복잡한 대위법의 사용이 고전주의의 대가 바흐(J. S. Bach)를 떠올리게 한다.
즉, 각을 이룬 하모니와 복잡한 멜로디 가 마치 바흐를 생각나게 한다는 것인데 사실 손드하임도 바흐에 대한 사랑을 피력한 바 있다.(Interview on Sunday Arts, ABC(Australia) TV, August 5, 2007,An Audience With Stephen Sondheim) 이런 손드하임의 음악적인 경향은 1973년에 초연된 <어 리틀 나이트 뮤직(A Little Night Music)>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으며 가사에 있어서도 모호함과 함께 위트가 있고 세련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70년대에 해롤드 프린스와 함께 만든 6개의 뮤지컬들은 모두 혁신적인 작품들로 앞의 두 작품이외에 <폴리스(Follies, 1971)>와 <퍼시픽 오버추어(Pacific Overtures, 1976)>가 있다. 특히 최근에 한국에서도 공연된바 있으며 영화로도 개봉되었던 <스위니 토드(Sweeney Todd)>가 1970년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손드하임의 대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