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경(사진·주부명예기자단 부단장)
“오빠 문 열어줘.”“오빠 나 나갈거야.”제 동생과 저는 방문을 붙잡고 오빠에게 하소연합니다. 그러나 오빠는 저와 제 동생을 돌보는 것이 귀찮아서 방문을 밖에서 잠그고 친구들과 놀러나가 버렸습니다. 저와 제 동생은 서로 방에서 끌어안고 울고불고 야단입니다. 시끄러운 소리를 들은 이웃집 아저씨가 오셔서 자물쇠를 뜯고 방문을 열어주어 우리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오빠가 부모님께 혼이 난 건 굳이 얘기 안 해도 아시겠죠?
아들 셋을 낳으신 후 딸 둘을 낳으신 부모님은 밖으로 일하러 나가실 때면 큰오빠에게 저희 자매를 돌보도록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초등학생이던 큰오빠는 어린 저희들을 돌보는 게 귀찮기는 하고, 그렇다고 그냥 돌아다니게 놔두면 잃어버릴 것 같으니까 아예 방에 가두고는 방문을 밖에서 잠근 채 친구들과 놀러나가 버린 것이죠.
어린 시절 저는 이렇게 오빠들을 따라다니며 놀았습니다. 요즘같이 날씨가 좋은 가을엔 놀 거리가 더 많았죠. 저는 포천시 영북면 운천이 고향입니다. 운천은 제가 어릴 적부터 군부대와 산이 참 많은 곳입니다. 억새꽃이 유명한 명성산의 산정호수와 한탄강을 끼고 있는 기암절벽이 아름다운 천혜의 고장이죠. 가뭄과 풍수해를 모르고 살 정도로 물 좋고, 산 좋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주로 산에서 잘 노는데 요즘처럼 도토리가 한창인 철엔 저와 오빠들은 두껍고 큰 도토리 잎사귀를 뜯어내어, 이쑤시개만큼 마디가 있는 풀을 마디마다 똑똑 잘라 그것으로 도토리 잎을 엮어 모자를 만들어 쓰고, 옷을 만들어 입습니다. 참 멋있어 보였어요. 도토리 잎으로 만든 모자와 옷은 잘 뜯어지지도 않고 아주 튼튼합니다. 그렇게 만든 옷을 입고 마치 장군이라도 된 양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산을 누비며 총싸움을 하고 다니고 가을 열매를 따 먹기도 하죠. 그러다 가끔은 잎사귀 뒤에 숨은 쐐기에 쏘이거나 벌에 쏘이기도 하죠. 쐐기에 쏘여서 퉁퉁 부은 손을 입으로 빨아내고 아픈 줄도 모르고 종일 쏘다닙니다. 벌에 쏘이면 친구들 집이나, 저희 집에서 된장을 몰래 떠다가 발라주기도 했죠.
오빠들과 저는 산등성이 비탈진 언덕 바위틈에 굵은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잎사귀 큰 나무를 위에 얹어 제법 큼직한 아지트를 만듭니다. 바닥엔 푹신한 풀도 깔아두죠. 그곳에서 먹고 자기도 하고, 소꿉놀이도 하면서 놀다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릅니다. 그렇게 많은 놀이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산 중턱에서 미끄럼을 타고 노는 것입니다. 들풀이 메마른 산 중턱에서 비료포대를 하나씩 들고 올라가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는 것인데 어린 시절 놀이터가 따로 없었던 우리들에겐 최고의 놀이입니다.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스릴과 속도감이 지금 생각해봐도 다시 해보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한번은 오빠가 올빼미 새끼를 어디서 주워 온 적이 있었어요. 집에 있는 새장에 넣어두고 키웠는데 들녘에서 벼를 베시는 아버지에게 점심을 가져다 드리면서 재미 삼아 벼도 베어보고, 돌아오는 길에 논두렁에서 발에 채이도록 풀쩍풀쩍 뛰어다니는 개구리를 잡아서 큰 강아지풀 가지에 주렁주렁 엮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렇게 잡아 온 개구리를 돌로 찧어 작은 조각을 내어 입으로 새소리를 흉내내며 먹여주면, 올빼미는 아주 잘 받아먹었습니다. 참 신기했죠.
한 낮에는 큰 눈을 잘 뜨지도 못하고 종일 잠만 자는 것 같은데 먹이를 주려고 소리를 내면 눈도 잘 뜨고 정말 잘 먹더라구요. 오빠가 어디서 새알을 주워와 부화시킨다고 바구니에 담아 아랫목에 넣어두고 품어주기도 했지만 끝내 부화시키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산에서 종일 놀다 맑고 푸른 가을하늘의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돌아오는 저희들은 모두 얼굴이 까맣게 그을은 영락없는 산골마을의 촌뜨기들이었죠. 그렇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부자였고, 정말 큰 꿈을 품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산과 들을 누비며 놀던 저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요즘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보면 정말 비교가 될 때가 많습니다.
아파트 빌딩만 바라보며 자라고 놀이감이라곤 컴퓨터 게임, 그리고 핸드폰으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많은 것을 바라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겠죠.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들녘에서 뛰놀고 산을 오르내리며 체력을 기르고 소리내어 울고 웃던 저의 어린 시절에 비해 너무 조용히, 개인적인 놀이에만 집중하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은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에게 산과 들을 누비며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는 부모들의 배려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하면 떠오를 수 있는 고향과 추억이 생각난다면 우리는 행복한 것입니다. 한번 아이들의 손에 들려진 닌텐도, MP3, 핸드폰을 치우게 하고 이 가을... 우리 자녀의 손을 잡고 한번 가까운 산으로 올라가 어린 시절의 놀이를 같이 해보면 어떨까요? 부모가 지냈던 어린 시절 그 추억을 들려주면서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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