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중한 자녀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엄마의 품이다. 사회구조가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고자 개인은 물론 국가까지도 어제의 일이 오늘은 쓸모없는 가치와 산물로 전락하고 있는 이때, 교육을 비롯하여 각계의 혼란이 걱정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보화 시대는 이런 것이다’라고 규정을 짓는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인간이 사는 사회는 적어도 양식과 상식이 존재하는 즉 기본이 갖춰져 더불어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훌륭한 인물의 면면을 살펴보면 기본에 충실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위아래를 알고, 질서를 존중하였으며, 기본 학습에 충실하였고, 또한 체력관리도 잘하였다. 주위 환경을 잘 관리하였고 여기에 의지와 끈기가 돋보여 자기주도적으로 일에 임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사회 전반적인 상황은 어떠한가? 어렵고 힘든 일은 기피하고, 마음은 있으되 의지와 끈기없이 지나친 욕심만 부리고, 정상적인 괘도가 아닌 일탈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우선 초등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결손 학생이 많이 양산된다. 옛날처럼 양부모가 사망했거나 어느 한쪽이 돌아가셔서 생긴 예는 드물다. 양부모가 엄연히 살아있으면서 생고아라는데 문제가 있다. 부모가 이혼하여 엄마는 집을 나가 아빠는 혼자 아니면 다른 여자하고 딴살림을 하는 바람에 조부모나 외조부모에 얹혀 사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버지와 근근이 골방에서 생계를 어렵게 이어가는 생고아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연들이야 나름대로 구구각각이다. 산업사회와 정보화 사회로 도래하면서 엄마들이 산업전선, 전업주부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해석하는 편이 좋겠다. 양부모가 계시는 정상적인 가정도 사정은 크게 다를 바 없다. 아빠는 한밤중에 들어와 새벽까지 직장에 나가느라 얼굴보기 힘들고 엄마 또한 저녁과 아침에 잠깐 보는 정도이다. 서로 다른 방에서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방이란 정보화시대의 산물인 다양한 방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애정을 먹고 자라야 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하고 따뜻한 엄마의 품에 안겨 종알종알 그날 있었던 일을 재재거리고 그것을 들어주는 엄마의 애정 말이다. 그런데 어떠한가? 어린이 목에 강아지처럼 열쇠를 매달게 해 놓고 엄마는 바쁘게 생활하느라 가정이라는 집에 붙어있을 시간이 없다. 학교가 파하면 학원에 내몰리는 신세가 된지 오래다. 그러나 아이들이 가는 곳은 어딘가? 뻔하다. 게임방, 만화방 같은 어둡고 시끄러운 방에서 생활하다 저녁 먹을 시간이면 돌아오는 게 고작이다. ‘방’ ‘방’ ‘방’이 문제이다. 엄마가 가는 방도 만만찮다. 이웃 친구와 가는 노래방, 심심풀이로 시작한 화투방, 나아가 비디오방이나 빙빙도는 방까지 헤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빠는 어떠한가? 아빠 역시 직장 생활에 시달리고 가정에가도 따뜻하게 맞아주는 아내의 품이 멀어져 소주방이나 노래방 등으로 전전긍긍하는 아빠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정보의 바다인 컴퓨터에 접속하면 어쩌면 그리 많은 방이 있는지 따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불건전한 방들로 인해 시간과 공간을 넓힐 수 없을 정도다. 농경 시대에 살아 본 5, 60년대 이전에 산 어른들의 심성이 그런대로 좋은 것은 단순한 방인 어머니 품과 안방과 건너방 그리고 사랑방에 지나지 않았기에 복잡하지도 않았으며 문제될 것도 별로 없었다. 가장 먼저 제자리를 잡아야 할 방이 해결되면 모든 문제가 봄눈 녹듯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엄마의 방이다. 다시 말하면 엄마의 따뜻한 온정이 깃들인 엄마의 품 즉 엄마의 방이다. 체내(자궁)에 있을 때의 그 모습으로 항상 아이들과 남편을 지켜주는 모습이 바로 엄마의 방이다. 엄마의 방은 넓고 한없이 크다. 이 세상의 모든 괴로움과 어려움도 포용할 수 있는 방을 지니고 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자녀들을 안겨주는 것을 시작으로 남편의 지친 몸을 한 순간에 녹여줄 수 있는 거룩하고 장대한 그 무엇인가를 품고 있는 것이다. 제국을 건설할 때 제왕의 파워도 여성(모정)의 온정(혹자는 치마폭이라고 하는데)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오늘날과 같이 피폐되고 거친 세상을 바로 잡는 길이 곧 어머니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흩어진 질서는 물론 경제의 위기나 전쟁까지도 망라하여 감당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교육을 비롯하여 사회질서, 국가 존망 등 위기의 인간상을 새롭게 정립하는 데 일조를 하기 바라면서 오늘을 걱정하는 이들의 하소연과 절규를 우리 어머니들이여 귀담아 듣고 전과 같이 서로가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