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방학이 되면 외할머니 댁에 갔다. 농사일이 없던 겨울방학에 더 자주 갔던 것 같다. 차편이 없어 십리 길을 걸어 다녔다. 한길을 따라 말미로 가면 뺑 돌아서 가는 거라했다. 그래서 괸돌에서 돌모루로 건너가 소랭이 길로 가로질러 나갔다. 소나무가 우거진 소랭이 길에 들어서니 갑자기 쐐-엥~소리와 쒸익~하는 휘파람소리가 들렸다.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데 바람소리만 요란하니 등골이 오싹해온다. “야아~ 호랭이 발자국이다!” 흰눈위의 정말 큰개의 발자국을 보고 언니가 소리쳤다. 잔뜩 겁을 먹어 어머니 손을 더욱 꼬옥 잡아 땀이 촉촉이 베어났다. 두껍바위(방축1리)에 도착해서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거리장에 이르러 한길에 나오니 녹다만 눈이 얼어붙어 맨질맨질 하였다. 어머니는 넘어지실까 옹숭거리고 종종 걸음을 치셨다. 그러나 소랭이길에서 잔뜩 움츠렸던 때와 달리 언니와 나는 쭈욱쭉 미끄럼을 탔다. 솔모루에서 회색 완행버스를 탔다. 차장은 차문에 한발만 설핏 올려놓고 차를 탕탕! 두 번치고는 “오라이~~” 라고 소리치며 매달리다시피 올라탔다. 의정부로 가 다시 벳고개 가는 버스를 타고 반시간은 족히 걸어 오목이고개를 넘어가야 한단다. 할머니 댁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뉘엇 뉘엇 넘어가고 있었다. 다음날 어머니는 아침을 드시고 사나흘 후 쯤 데리러 오겠다면서 집으로 가셨다. 외삼촌이랑 놀고 있으라며 엄마와 함께 나가셨던 외할머니께서 모자가 달린 빨간 나일론잠바와 고리땡(골덴)바지를 사오셨다. 너무 좋아서 몇 번을 입었다 벗었다 요신을 떨었다. “넌 할미 심심한데 여기 살자. 양말허구 털장화두 사주마.” 외할머니의 말씀에 신이 나서 잘 놀았다. 아랫집 친구에게 옷 자랑도 하고 한중 고개로 요소포대 들고 미끄럼 타러 갈 때는 털장화도 신고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튿날이 되자 낮에는 그럭저럭 잘 놀았는데 해가 지고 어둑어둑 해지니 자꾸만 집 생각이 났다. 눈물이 그렁그렁 하더니 줄줄 흘렀다. 잠바고 털장화고 다 버리고 엄마한테 가고 싶었다. 지난 여름방학에도 할머니께서 땡땡이(물방울 무늬) 원피스를 사주었을 때도 그랬다. 언니는 감자를 캐라고 하던지 소죽을 끓이라든지 아버지가 시키시는 심부름을 하지 않아도 되니 더 놀다 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내가 가고 싶다고 칭얼거렸다. “앞으로 또 그러면 다시는 데리고 다니지 않을거야.” 라고 하면서 언니는 할 수 없이 집으로 왔다. 그 생각이 떠올라 무쇠솥에서 밥을 푸고 계신 할머니에게로 갔다. “할머니, 집에 갈래요” “이젠 캄캄해 못가. 한밤 자구 가자. 내일 낮에 벽시계가 땡땡- 두 번 치면 어멈 올 거야“ “그치만 우리 집엔 저런 시계 없어서 엄만 못 듣잖아요.” 여기서 치는 소리도 엄마는 다 들을 수 있다며 할머니는 나를 달래 저녁을 먹여 재웠다. 그러나 얼마만큼 자다 일어나 소변을 보고 자려하니 괘종시계의 “똑-딱” 거리는 소리가 자꾸만 귀에 거슬렸다. 억지로 잠을 자려고 하면 할수록 시계바늘이 기어와 내 귓바퀴에 붙은 것처럼 점점 크게 들렸다. 누렁이가 컹컹 짖어 대는 소리가 차라리 덜 시끄러웠다. 집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소리라 낯설기만 하였다. 겨우 잠이 들려고 했는데 이번엔 땡.땡 땡. 쳐 대는 종소리에 또 잠이 깼다. 참다못해 자는 언니의 옆구리를 쿡쿡 건드렸다. “왜, 오줌마려?” 언니가 잠에 취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언니이, 집에 가구 싶어” “알았어. 내일 가자 언니가 데리고 갈게.“ 언니는 내손을 꼬옥 잡아 주더니 마치 아기를 재우듯이 가슴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시계는 언제나 두 번을 칠까 물어보았더니 큰바늘이 빨리 빨리 가야한다고 하였다. “잘 놀다가야지, 할머니가 잠바도 사주셨는데….” 언니는 잠을 깨웠는데도 신경질도 내지 않고 가만가만 대답해 주었다. 몽당연필이나 책받침을 가지고 또, 소꿉장난을 하다가도 서로 욕심을 부리며 빼앗고 싸웠던 언니가 엄마 같았다. 이내 잠이 드는지 가슴을 두드리던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시계소리는 여전히 시끄러웠다. 저 시계만 없으면 엄마는 아무 때나 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