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자 하지 못 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이의 무리도 슬피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서름에 겹도록 부르노라. 서름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감상=해설 시인 김소월은 원명이 김정식이다. 1903년부터 1934년까지 살았는데 더 살았으면 아마도 민족시인으로 노벨상 후보였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시인이다. 대개 ‘진달래꽃’을 대표작이라고 하지만 ‘초혼’은 그 절규가 피를 토하듯 애절하여 더욱 민족시인의 향기가 짙게 풍기고 가슴 태우며 사랑했던 민족시의 칼날이 가슴을 찌른다. 소월의 애인은 민족이었다. 영원한 민족의 독립과 광복을 갈구했던 민족시인의 애타는 피의 절규는 지금도 남아서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50년대까지만 해도 ‘김소월 시초’나 ‘진달래꽃’ 시집을 손에다 들고 다니며 암송하지 않으면 가짜 학생이었다. 여고 졸업후 양장을 하고 학교배지와 소월시 한권 들고 다니는게 유행이었고 ‘사상계’나 ‘소월시’를 들고 다니지 않는 학생은 고교생이 아니었다. 그토록 소월의 시는 사랑을 받았다.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소월님은 일본 상과대학을 수학하고 고향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장사를 하였으며 시인 김안서 님에게서 사사를 받았는데 스승 김안서 님을 뛰어 넘어 독특한 민요풍의 시의 세계를 개척하였다. 삼십대 초 아까운 나이에 요절하였는데 지금도 님의 시는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다. 당신도 사랑하는 님 앞에서 소월의 시를 읊어보라. 분명 그 애인은 따스한 입김으로 향기 뿜으며 당신에게 안겨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