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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초대 포천문화원장 崔 宗 圭

포천문화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 16년
김영복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7월 13일

 반월산성 지표조사 통해 삼국시대 축조 사실 밝혀져


범종보다도 3,1운동 만세 상징물이나 기념탑 건립 시급


포천문화원 창립이후 16년동안 포천에 내려져 오는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은 물론 현대예술탄생의 가교역할을 해온 최종규 문화원장은 포천문화예술을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유림의 대표로도 활동해온 최 원장의 모습에서 포천의 선비정신을 읽을 수 있으며 갈수록 잔꾀만 늘어가는 시대의 흐름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인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특히 초대 문화원장이라는 중책을 4대에 걸쳐 수행하면서 포천의 전통성을 15권의 책자에 수록한 탁월한 능력을 포천사람들이 본 받아야 할 것이다.


한때는 정치인들이 활발한 문화활동에 대해 정치인을 꿈꾸는 것이 아니냐는 그들의 시각으로 볼 때도 있어 보이지 않는 갈등과 오해를 불러왔지만 늘 그 자리에서 든든한 포천문화예술의 버팀목이 되어 왔던 것이다.


이같은 최종규 원장의 포천문화원장으로서의 삶을 조명해 봄으로써 포천문화예술의 발전과시민사회의 성숙한 문화의식의 제고를 기대해 보고자 한다.(편집자주)




지난 85년 포천문화원 초대 원장으로 추대되어 2002년까지 16년동안 포천문화의 산파역할을 감당해온 포천문화원 최종규 초대원장(사진.73.포천시 신북면 가채리 711).


 


최 원장은 신북면 가채리의 경주최씨 문중에서 한말의 위정척사 운동의 표상이며 항일독립투사인 면암 최익현 선생의 현손으로 젊은 시절부터 고향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로 포천교육청과 포천농촌지도소에서 근무해왔다.


 


그 후 통일주체국민회의 초대,2대 대의원을 역임했고 포천군축산업협동조합장을 역시 2대에 걸쳐 연임하면서 지역축산업의 기틀을 다지기도 했다.


 


아울러 한국청년유도회 포천지회장과 유도회 포천군지부장을 역임하며 지역 儒道발전에도 헌신한 것으로 알려져 포천향교 전교로서 지역의 존경받는 원로지도자로서 유도의 강성과 도의선양에 심혈을 경주하여 괄목할만한 업적을 이룩하기도 했다.


 


최 원장이 포천문화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1985년으로 문화의 불모지라 하였던 이 지역 문화창달의 효시가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최 원장은 ꡒ조선조 말엽 의정활동을 했던 면암 최익현 선생이 고조부, 을사보호조약체결 이후 20대의 나이로 분을 참지 못해 일생 동안 독립운동에 나섰다가 서대문, 해주, 공주 등지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해방전에 돌아가신 조부와 40대 나이로 6.25전쟁통에 북한군에 납치돼 행방이 묘연한 부친의 혈통을 이어받은 탓인지 우리 고장의 역사를 잇는 문화발전을 위해 자연스럽게 뛰어들게 된 것 같다ꡓ며 문화원 사업에 참여하게 된 동기를 설명한다.


 


매사에 철두철미한 성격 탓으로 한 번 하려고 추진했던 일은 완벽하게 끝내야 직성이 풀린다는 최 원장은 비상근직 이었던 포천문화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단 하루라도 사무실에 나오지 않으면 궁금하고 허전하다며 매일 같이 출근해 각종 문화사업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과거 양반 고을이었던 탓인지 민속놀이가 전무하여 지역에 민속놀이를 만들기 위해 지난 83년 당시 인천교육대학 김순제 교수의 강북지역을 중심으로 한 ꡐ경기도 노동요의 음악적 분석ꡑ이란 논문을 참고로 해 메나리를 불렀던 김가한씨등 40명을 대상으로 13곡의 가사 및 곡을 채집,정리해 포천메나리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초대 포천문화원 류기수 사무국장은 가은집에서ꡒ향토문화창달과 지역사회교육에 남다른 열정과 투철한 사명감으로 선봉에 서서 쌓아오신 최종규 문화원장님은 무보수 명예직만으로 청년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묵묵히 참봉사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일깨워 주신 분ꡓ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최 원장이 포천문화원장 16년 봉직기간동안 이룩한 업적은 묻혀져 있는 역사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적 15권을 발간한 것으로 대표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포천지역 독립운동사 발간(1991)▶향토유적 사료집 제1집 발간(1991)▶지명유래집 발간(1993)▶포천 문화사랑 창간(1993)▶포천의 서원 발간(1994)▶각기관 연혁집 발간(1995)▶포천문화원 10년사 발간(1996)▶문학의 향기 발간(1996)▶포천의 사․단․정려 발간(1997)▶포천 금석문 대관 발간(1998)등이다.


 


또 현대 예술세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포천예술인동우회를 결성해 포천예총 탄생의 산파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다.


 


포천예술인동우회는 모두 8개 분과가 운영되고 있으며 초대 예술인동우회 김진동 회장이 현재 예총 회장을 맡고 있다.포천예술인동우회는 서예,음악,문학,무용,국악,연극,사진 등 8개분과를 두어 분야별로 노력했다.


 


또 향토사연구소를 설치하여 각종 사료집을 발간하는등 경기도내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연구소를 이름을 날리고 있다.


 


포천반월산성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 온 최 원장은 반월산성을 궁예가 축조했다는 설에 대해 강한 이의를 제기하고 지금은 고인이 된 박찬원 군수 재임시절에 예산을 마련해 반월산성 지표조사에 착수해 궁예시대보다 300년 더 거슬러 올라간 삼국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밝혔졌다.반월산성이 현재는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최 원장은  포천문화원 창설 10년만에 포천문화원 노래 공모를 실시해 김진동 작사.박장순 작곡의 포천문화원가를 제작했다.


 


가사는 1절이 왕방산 정기받아 한빛으로 우뚝서 꺼져가는 민족혼에 횃불을 당겨 슬기모아 땀흘리니 새싹이 돋네 어찌아니 가꾸리 오 포천문화원,2절은 한내천 굽이굽이 이어온 역사를 우리품에 안고서 갈고 닦으면 천만년 이어갈 열매 맺히니 영세에 빛나리 오 포천문화원,3절은 선열들의 맑은 정신 이슬처럼 영롱한 여기는 우리고장 충절의 터전 남기신 뜻 진리되어 갈길 밝히니 그 뒤를 이으리 오 포천문화원 이다.


 


제1회 반월문화제를 개최하면서 최 원장은 ꡒ포천은 그 어느 지방보다도 급격한 지역개발이 시작된 희망을 간직한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군으로서 이 지역을 가꾸고 발전시켜야 할 사명을 가진 우리 모두의 고향이기에 오늘에 시작하는 반월문화제는 더욱더 소중하며 이를 계기로 훌륭한 우리 선대들의 유업 및 문화유산을 발굴 계승하여 전통있는 문화군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그 터전위에 새로운 지역문화를 창조해야 되겠다ꡓ고 밝혔다.


 


지난 94년 동극 경연대회를 처음 개최하면서 최 원장은 ꡒ우리고을의 연극의 맥은 포천실업고등학교에서 황행일 선생의 집념으로 한내 연극반을 탄생시킨 것이 1983년이라 생각된다ꡓ며 ꡒ제1회 동극경연대회는 처음이라 7개팀밖에 출전을 못했지만 2회 3회 거듭될수록 새롭게 새싹들이 움터 나오리라 믿는다ꡓ고 말했다.


 


최 원장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포천지역 독립운동사 발간사업을 추진했다. 1991년에 발간한 독립운동사는 포천지역 의병전쟁과 포천의 3․1운동,포천출신 독립운동가등의 내용으로 구성됐다.


 


포천출신 독립운동가로는 ▶최익현▶박복인▶윤유길▶이범영▶최면식▶고진환▶권동진▶신영희▶안응건▶유중식▶이영여▶이종원▶이종일▶정수환▶조계식▶최석휴▶최학돌▶함병현▶김마리아 안희경 안옥자▶강지형▶이주호▶이민식▶조황▶조영원▶이규채▶김영관 등이다.


 


최근 포천시의 범종제작 사업추진에 대해 최 원장은 ꡒ현재 포천에서 시급히 추진해야 할 사업은 3.1만세운동의 상징탑이다 조형물 설치가 시급하다ꡓ고 강조했다.


 


만세교에는 당시 영중면, 영북면, 일동면, 이동면, 신북면 주민들이 나와 포천을 향해 만세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최 원장은 포천시민들은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향유하기를 바라고 행정은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의 문화원사는 1986년 포천읍 신읍리 33-34 택지 70평에 건평 29.44평을 12동우회로부터 인수받았다. 당시에 자체건물을 갖고 있는 문화원은 경기도에서 유일하게 포천문화원 뿐이었다.


 


최 원장은 ꡐ문화ꡑ의 개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ꡒ뿌리 없는 나무가 없고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진리처럼 우리의 문화도 우리의 뿌리인 역사와 전통을 바로 잡아야 할 뿐만 아니라 묻혀진 문화유적을 발굴하여 튼튼하게 뿌리를 보존하며 새로운 문화발전을 위해서 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것이 문화운동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가 있고 태어난 고장과 성장한 생활 환경이 있다. 자기가 태어나고 성장한 환경과 풍습 그리고 인간관계는 사람의 인격형성에 큰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그리움이 사랑의 시작이며 사랑은 바로 문화를 창조해 나간다ꡓ고 밝혔다.


 


문화원 창립과 동시에 이사로서 최 원장의 모습을 지켜본 이효종 포천향토사연구소장은 ꡒ최 원장은 凡人으로서 가질 수 없는 특별한 세 가지 모습을 갖춘 인격자였다.


첫째는 투철한 지도력과 추진력을 갖고 매사를 처리해 나가며 두 번째는 아집과 독선을 버리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모습이고 세 번째는 즐겁게 베푸는 것이었다.


 


 이 세가지 모습을 갖추고 문화원장의 큰 업적을 남기고 포천군민이 존경하고 따르는 인사가 되것이라 하겠다. 그러하였기에 1986년부터 2002년까지 4회 중임을 하고 포천향교 전교로 선임되어 포천유림의 대표자로서 활약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ꡓ고 밝혔다.


 


포천의 유림으로서 선비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현대예술과의 조화를 통해 포천문화의 새 장을 열어가기 위해서는 최종규 초대 포천문화원장의 문화활동을 보다 세밀히 연구하고 파악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김영복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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