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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 이야기> (260)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와 이성길(李成吉)
수필가 김창종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9년 01월 20일


 김창종(사진, 수필가)

 

임진왜란 당시, 진중에서 국보인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를 그린 무인이자 그림에도 능한 문인이며 선비였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무이구곡도는 이성길님의 역작인데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비견될만한 작품이라고 평하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이성길(李成吉)님은 임진왜란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무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진족을 물리치는 등, 국방에 큰 전공을 세운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성길님을 장군이나 무관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다만 병조에 몸담고 난시에 변방의 수령으로 책임을 다하였으며 의병을 일으켜 국란을 극복한 난시(亂時)의 영웅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으며 무이구곡도라는 중국 화풍의 그림을 뛰어난 솜씨로 그릴만치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분이었다.


자는 덕재(德哉), 호는 창주(滄洲), 본관은 고성이고 참봉 정려의 자이다. 선조22년(1589) 진사시에 장원 급제하였으며 그 해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 병조좌랑(兵曹佐郞)에 임명되는 영광을 입었다.


선조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양립의 종사관이 되었다가 서울이 함락되자 부친과 함께 관북(함경도)로 갔다. 경성에 이르러 평사(評事) 정문부(鄭文孚)를 따라 의병을 일으켜 광주(光州)성에서 왜적을 물리치고 국경인(鞠景仁)등 반역자(왜적에게 부역한 자)들을 처단하였다. 다시, 명천과 길주에서 왜적을 만나 추격, 장평에서 격파하고, 그 해 12월 임명, 상포 등지에서도 왜적을 격파 전승하였다. 다음 해, 종성으로 침략한 여진족을 물리쳤으며, 단천(端川), 마흘(馬屹)에서 가등청정(왜적 대장)을 만나 철퇴시켜 관북(함경도)의 평온을 되찾게 하는데 큰 전공을 세웠다.


병조좌랑으로 탁배(擢拜) 되었다가, 선조29년(1596) 북청판관으로 부임하였는데 본부(本府)에 있는 노비 50여명을 법에 의해 모두 차(差)하였다. 그 후 수성도찰방(守成道察訪)을 거쳐 함흥판관을 역임하고 선조34년(1601) 여산군수를 지내고 홍문관 교리에 제수되었으며 이듬해, 형조정랑이 되어 함경도에 암행어사로 파견되었다.


선조36년 모화관 친시(親試)에서 장원을 하여 말 1필의 상을 받았다.


광해군8년(1616) 동지사(冬至사使:중국에 파송되는 최고의 외교사절)로 중국에 다녀왔다. 벼슬이 병조참판(현: 국방차관)에 이르렀다. 광해군12년(1620년) 연위사(涎慰使)로 중국에 가다가 병사했다. 님은 애국충정의 용장이었으며 화가였고 외교사절(외교관)이었다.


‘창주공(滄洲公)’의 후손으로는 전 서울한산초등학교장을 역임한 효문(孝文) 이현모 교장(종손), 전 군수 이진호, 전 국무총리 이한동, 재미 의학박사 이한중, 경영학박사 이한륭, 세계키와니스(자선단체) 전 총재 이긍호, 전 한양대 부총장 이정호 박사 등이 있다.
수필가 김창종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9년 0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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