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계는 상업성으로나 작품성 면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아닐까 한다. 박스오피스 흥행에서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작품들이 4편이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들 작품들은 모두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한 뮤지컬을 영화한 것으로 브로드웨이 버전과는 물론 커다란 차이점이 있었다.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당시 주연을 맡았던 배우들이 모두 교체되었고 영화문법에 따라 대대적인 각색 작업과 음악적인 편곡이 완벽하게 이루어져 상업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더 큰 성공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이들 4편의 작품들 중에서 특히 1960년대 전반기에 개봉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1961)>와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1964)>는 각각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서 10개와 8개의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는데 이는 뮤지컬 영화가 극영화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잠재운 사건으로서 뮤지컬 영화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1957년에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는 영화화되면서 많은 부분에 있어서 각색이 되었다. 강렬한 춤과 음악이 조화된 완성도 높은 뮤지컬로 이미 검증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영화적인 특성에 힘입어 더욱 다이나믹하고 역동성이 넘치는 작품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는데 특히 다이나믹한 카메라 워크와 전투적인 모던 발레의 역동성이 조화를 이루어 더욱 흥미진진한 뮤지컬 영화로 만들어졌다. 특히 안무가 제롬 로빈스(Jerome Robbins)는 감독의 역할까지 맡으며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는데 브로드웨이에서 이룩한 아서 로렌츠(Arthur Laurents)의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와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의 강렬한 음악을 강렬한 댄스를 이용해 완벽한 조화를 이루게 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60퍼센트 이상 촬영이 진행되었을 때 제롬 로빈스는 해고당하며 감독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과도한 제작비 사용이 문제가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완성한 명장면들 중에서 해고당하기 직전에 만들어진 싸움장면(The Rumble)은 무대연출을 뛰어넘는 최고의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영화화되면서 가사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4년 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었을 때 쓰였던 가사내용이 1961년 영화화될 당시에는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대대적인 수정을 가해야만 했다. 주요 장면도 순서가 바뀌거나 각색 되었다. 특히 브로드웨이에서는 뮤지컬 넘버 “아메리카(America)"가 나오기 전에 토니와 마리아가 만나는 발코니 장면이 먼저 나왔는데 영화화되면서 순서가 뒤바뀌었다 .주인공 남녀의 첫 만남과 발코니(비상계단)에서 부르는 듀엣 사이의 시간의 경과를 길게 보여주면서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배역에 있어서 남자 주인공 토니(Tony)역으로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제일 먼저 거론되었다. 하지만 엘비스는 매니저의 의견에 따라 거절했는데 후일 영화가 대성공을 거두며 10개의 아카데미상을 휩쓸자 엄청나게 후회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 때는 이미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화인생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여자주인공의 경우도 나탈리 우드(Natalie Wood)가 1순위는 아니었다. 나탈리 우드는 이미 아역배우로 알려져 있었지만 성인배우로는 특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영화 <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 1961)>의 여자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면서 10대 소녀들의 우상이 된 웨렌 비티(Warren Beatty)의 상대역을 맡아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특히 영화 밖에서도 두 사람은 실제 염문을 뿌리며 화제를 불러일으켜 더욱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어느 날 웨렌 비티가 토니 역으로 거론되며 테스트를 받게 되었을 때 연습상대로 동행한 나탈리 우드는 두 사람의 로맨틱한 유명세를 등에 업고 함께 출연하고 싶은 의지를 피력했는데 제작자들도 그 의견에 동의하며 나탈리 우드를 마리아 역에 캐스팅하게 되었다. 하지만 웨렌 비티는 배역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정으로 끝내 토니 역에서 제외되었다. 영화 속에서 들려오는 마리아의 대사는 나탈리 우드의 목소리이지만 노래는 다른 배우에 의해 더빙되었다.
<마이 페어 레이디>의 경우도 여자 주인공은 엄청난 경쟁을 불러일으켰으며 당시에 수많은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원작의 작사가이며 영화대본까지 담당했던 알란 제이 러너(Alan Jay Lerner)의 강력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1964년에 제작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의 주인공은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으로 결정되었다. 이미 브로드웨이에서 검증된 쥴리 앤드류스(Julie Andrews)는 주인공 일라이자 역으로 뛰어난 명연을 보여주었지만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1953)>과 <티파니에서의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 1961)>의 세계적인 스타 오드리 헵번에게 박스 오피스의 성공을 위해서 주인공을 양보해야만 했다. 오드리 헵번의 빈약한 노래실력 때문에 노래 더빙배우를 기용하면서까지 내린 워너 브라더스사의 결정은 쥴리 앤드류스에게 있어서 상당한 충격과 아픔을 주었다. 역시 유명한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 일명 리즈 테일러) 또한 주인공역을 따내기 위해 길고 힘든 싸움을 벌였으나 당시 오드리 헵번의 유명세를 누르지는 못했다.
<마이 페어 레이디>의 주인공 역에서 밀려난 쥴리 앤드류스는 같은 해에 월트 디즈니사에서 제작한 뮤지컬 영화 <메리 포핀스(Mary Poppins, 1964)>의 타이틀 롤을 맡아 아이러니컬하게도 연기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오드리 헵번을 누르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마이 페어 레이디>가 8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주인공 여자배역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며 노래와 연기력을 함께 갖춘 쥴리 앤드류스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워너 브라더스 영화사와 쥴리 앤드류스의 악연(?)은 몇 년 후 뮤지컬 영화 <카멜롯(Camelot)>으로 더욱 두드러졌다. 이미 <카멜롯>의 여주인공으로 브로드웨이에서 극찬을 받았던 쥴리 앤드류스를 영화를 만들면서 재기용하려 했지만 쥴리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해 있었고 <마이 페어 레이디>의 아픈 기억때문인지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의 출연료(7백만 달러)를 요구하여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이들 두 편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마이 페어 레이디>는 장르와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까지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명작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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