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선(인하대교수, 문학과지성사 대표)
동농이해조선생기념사업회는 2008년12월15일 문학과 지성사 홍정선 교수(인하대)를 초청해 이해조의 문학사적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동농 이해조를 위한 몇 가지 변명’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실시했다. 이날 특강의 원문을 게재하여 독자들에게 포천출신 동농 이해조 선생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3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주)
변명이란 우리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의미로 어떤 잘못이나 실수에 대하여 구실을 대며 그 까닭을 말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에게 비교적 익숙하지 않은 의미로 옳고 그름을 가려 사리를 밝힌다는 뜻입니다. 저는 오늘 선각자 동농(東?) 이해조(李海朝) 선생을 위해, 이 자리에 직접 나설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이해조 선생을 위해 변명이란 말이 지닌 두 번째 뜻으로 몇 가지 변명을 해 보려고 합니다.
1. 최근 우리나라의 친일논란에 대한 반성
먼저 이해조에 대해서도 친일문제에 대한 논란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최근 우리나라에서 무차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친일시비와 관련하여 한 두 가지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 저의 변명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친일문제에 대한 각종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만 유독 근래 여러 곳에서 많은 시비가 벌어진 것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에 대한 정부차원의 본격적인 진상조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난 노무현 정권 하에서 친일반민족 행위자 진상규명법이 통과된 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반민족 행위자 인명사전 제작에 착수하면서 의심스러운 사람에 대해 광범하게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 최근 시비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입니다.
친일행위에 대한 진상규명은 해방 후 6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이를 위해 뒤늦게나마 정부차원에서 객관적 조사와 그 결과에 따른 처리를 하겠다는 명분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우리 대한민국에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의 진행이 차분히 질서 있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이곳저곳에서 사전에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이 사실보다 풍문에 근거하여 먼저 판단하려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습니다.
통영에서 몇 년 동안 진행된 청마 유치환에 대한 친일시비가 그런 경우의 대표적인 예에 속합니다. 일제시대에 나온 한 책이 청마에 대해‘만주 협화회 근무’라는 구절을 적어 놓고 있다는 것 때문에 가장 존경받던 시인의 하나였던 청마는 하루아침에 공격과 비판의 대상으로 바뀌었습니다.
더구나 이 논란은 통영시가 청마를 모티프로 한‘깃발축제’를 계획하고 이를 예총이 지지하고 민예총이 반대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현재까지 뚜렷하게 청마의 친일행위를 입증할만한 구체적 물증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소문이 사람을 잡는 우리나라 풍토에서 격렬한 논란만으로도 청마와 그 유족들이 커다란 상처를 입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음으로 군산에서 나타난 채만식을 둘러싼 시비는 또 다른 논란의 한 대표적 예입니다. 채만식은 분명히 친일행위를 한 사람이고, 그 사실을 자신이 분명히 밝힌 경우입니다.
그의 친일행위는 마지못해 한 두 차례 강연회에 참석한 정도의 사소한 것이지만 어쨌건 친일행위를 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 사실 때문에 채만식은 1930년대에 가장 뛰어난 소설을 쓴 작가임에도 군산시는 시민들의 눈치를 보며 기념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모습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군산시가 채만식을 기념하려는 이유는 그의 인격 때문이 아니라 그가 슨 소설작품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도스또예프스키, 보들레르, 모짜르트를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그들의 인격 때문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채만식을 기념하는 이유가 그의 인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소설에 있기 때문에 온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에게 인품과 지조가 생명이지만 예술가에겐 작품의 뛰어남이 생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격에는 문제가 있는 미당 서정주를 우리는 중요한 시인으로 기억하지만 작품은 보잘 것 없는 수많은 시인들을 망각해버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홍정선 교수 프로필 1953년 경북 예천 출생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동대학원 졸업 한신대학교 교수(1982~1992) 인하대학교 교수(1993~ 현재) 문학과 지성사 공동대표(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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