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우 영 (대진대 교수, 연출가)
문화예술과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그 시대의 경제사정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막대한 제작비가 소요되기 때문에 투자자들 없이는 제작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전 세계가 글로벌화 되어있어 미국과 같은 대국의 경제악화에 따라 많은 나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특히 미국상황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우리나라는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올해 미국의 경제악화로 인해 전 세계 경제도 침체되어 각국은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고 대대적인 감원열풍과 함께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구조조정과 규모축소에 열병을 앓고 있다. 이렇게 한 나라가 경제침체를 겪게 되면 가장 타격을 받는 분야가 역시 예술 및 엔터테인먼트이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으면 제일 먼저 줄이는 것이 문화예술 투자이기 때문이다. 순수예술의 경우는 경제가 호황이든 불황이든 항상 어려움을 겪는 분야여서 별다른 충격이 있을 수 없지만 엔터테인먼트 분야 특히 영화는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올해의 한국 영화시장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였고 급기야 투자자들이 빠져나가 거의 공황상태를 이룰 정도다. 비공식적인 이야기지만 현재 연극영화계의 큰손 CJ엔터테인먼트가 문화예술분야에서 철수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문화예술 방면에 투자한 돈과 노력으로 볼 때 CJ의 역할은 지대한 것이었지만 누적되는 적자와 세계경제의 불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오래전 삼성이 문화예술방면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으며 문화예술의 파수꾼 역할을 자처했다가 발을 뺐던 때를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경제 불황으로 인해 규모가 축소되거나 투자가 줄고 있다고 해서 작품의 질적인 면에서도 타격을 입는 것만은 아니다. 사실 1930년대 세계경제공황과 2차 세계대전 그리고 1950년대 전반에 반 공산주의 선풍으로 미국을 휩쓸며 할리우드 마녀사냥이라는 수식어를 만들어냈던 매카시즘(McCarthyism)은 영화 투자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다. 그 결과 영화의 제작편수가 현저히 감소되고 더욱이 1960년대 텔레비전 보급으로 영화관객이 감소하면서 뮤지컬 시장은 다른 장르에 비해 훨씬 큰 공황을 가져왔다. 물론 그 영향은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지속되고 있지만 작품의 질적인 면에서는 다른 시대보다 훨씬 완성도 높은 명작들이 만들어졌었다. 1960년대의 예를 들면 미국사회가 엄청난 변혁의 고통을 겪었지만 할리우드 뮤지컬은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작품들을 4편이나 만들어냈다. 기록으로 볼 때 보수적인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뮤지컬이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기란 매우 어려운데 10년 사이에 네 편이나 수상했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1960년대는 1950년대에 이어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1935∼1977)의 영화들이 꾸준히 배급되었다. 후반으로 갈수록 엘비스의 영화들에 대한 인기도가 떨어졌지만 그와는 별 상관없이 엘비스의 5번째 영화 <지 아이 블루스(G.I. Blues)>를 시작으로 31번째 영화 <체인지 오브 해빗(Change of habit)>까지 1960년대에만 해도 무려 27편이나 양산되었다. 작품성뿐만 아니라 흥행 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지만 엘비스의 인기를 등에 업은 영화산업의 상업성이 극한에 이른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화 이외에 1960년대에는 다양한 뮤지컬 영화들이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중 무엇보다도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4편의 작품은 21세기가 시작된 오늘날에 까지도 방송이나 케이블 그리고 DVD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들 작품들은 모두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한 뮤지컬을 영화한 것으로 브로드웨이 버전과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었다. 모두 주연배우들이 교체된 것도 중요한 변화였는데 상업적인 면에서 오히려 더 큰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1961)>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1964)>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 1965)> 그리고 <올리버(Oliver!, 1968)> 등 이들 네 편의 뮤지컬들은 브로드웨이에서도 박스오피스 대히트를 기록한 작품들이었지만 영화로 만들어져 더욱 빛을 발한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 이외에도 밥 포시(Bob Fosse)가 연출한 <스위트 채리티(Sweet Charity, 1969)>가 흥행기록을 세웠는데 유명한 여배우 셜리 맥클레인(Shirley MacLaine)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1960년대를 대표하는 뮤지컬 영화의 하나가 되었다. 한편에서는 가창력과 연기력을 갖춘 바브라 스트라이젠드(Barbra Streisand. 1942∼)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두 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화니 걸(Funny Girl, 1968)>과 <헬로 돌리!(Hello, Dolly!, 1969)>였다. <화니 걸>은 바브라 스트라이젠드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다음 해에 만들어진 <헬로 돌리!>는 미스 캐스팅이라는 오명을 쓰며 흥행에 대참패를 기록했다. 엄청난 제작비를 투여해서 만든 뮤지컬의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는 <헬로 돌리!>에서 중매쟁이 역할은 27세의 바브라 스트라이젠드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배역이었다.
바브라 스트라이젠드는 미국에서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가장 성공한 여자 엔터테이너중의 하나이며 가장 솔로 음반이 많이 팔린 가수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영화계에 진출해서도 데뷔작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가수, 작곡가, 영화제작자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첫 영화 이후 배우로서의 길은 다른 분야만큼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배우로서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직접 부른 영화 OST‘피플(People)’,‘더 웨이 위 워(The Way We Were)’,‘에버그린(Evergreen)’ 등이 더 유명하다.
1960년대는 작품성면에서 뮤지컬 영화의 황금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명작들이 만들어졌으며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어느 시대보다 큰 성공을 거두고 4편이나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할 만큼 커다란 업적을 이룩한 시대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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