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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이야기(256)

‘백매헌(百梅軒)’의 정구(鄭球)
수필가 김창종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12월 10일

과거, 고려 말, 고려 유신들 72인이 개성 인근 두문동에서 은거하여 조선조개국을 무언 저항한 일은 역사에 기록되어 독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며 본란을 통하여 유응부 장군의 충목단에 함께 제향 되고 있는 양치(楊治)선생의 이야기(두문동에 은거)도 본란을 통하여 소개된바 있으나 은거가 아니라 중종14년(1519년) 기묘사회가 일어나 조광조 등 참신하고 개혁성 있는 신진사류들이 참화를 당하자 벼슬길에서 멀어지고자 내 고향 포천‘두문동’에서 18년간이나 은거한 분이 바로 정구(鄭球)님이다.
‘두문동(杜門洞)’은 신북면 기지리에 있는 마을이다. 님은 성품이 강직하고 진실하며 사치를 싫어하였으며 영리(榮利)를 쫓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요인들과도 교류도 하지 않은 채 두문동에서 철저한 은둔 생활을 하며‘두문불출(杜門不出)’하였던 인물이다.
일찍이 한원(翰院)에서 사필(史筆:역사를 기록)을 기록할 때에도 사실대로만 기록하고 불의(不義)와 불법(不法)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선비정신의 소유자였다.
이러한 강직한 성품은 강한 반발에 부딪쳐 권모술수(權謀術數)가 난무하던 당시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을 리 없었다. 그래서 많은 간신들에게 미움을 샀다고 한다.
조선 중종조 사람으로 생몰년은 미상이고 신북면 기지리에 두문동에서 18년간 은거하였으며 두문동에 묘가 있다.
자(字)는‘대명(大鳴)’호는‘괴은(乖隱)’본관은 동태, 무안현감‘유의(務安縣監 有義)’의 아들이며‘남명 조식(南溟 曺植)’의 문인이다.
님은‘자’나‘호’를 보아도 님의 성품이 어떠했나를 알 수 있으며 부친의 이름에서도 곧고 바른 성품을 잘 알 수 있어 가슴에 와 닿는 바가 있다.
연산군7년(1501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5년(1510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承文院)에 들어갔으며 그후 예 문관 검렬과 사간원 정언(正言)등을 거쳐 단천군수를 지냈다. 그 후 첨정과 부정(副正)을 지냈다.
‘한원(翰院)’이란 곳은 곧고 바른 선비들이 모여 임금께 바른 말을 고하는 엘리트들의 관직과 관청을 말한다. 이 곳에서 임금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 높은 벼슬자리에 오를 수도 있으며 높은 벼슬아치들과  어깨를 나란히 영의정까지 오를 수도 있는 관직이다. 그러나 정구(鄭球)님은 임금 중종의 두터운 신임과 총애를 받던 선비 중의 선비 조광조(동방18현으로 향교에 모셔 제향 되는 현인)같은 선비가 참화를 당함에 벼슬길에 큰 회의를 느끼고 두문동에 은거하며 살았다. 사랑 앞 100그루의 매화를 심은‘백매헌(百梅軒)’은 님의 정신을 대변하고 있다. (저서: 괴은집)
수필가 김창종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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