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우영(대진대 교수, 연출가)
세계적인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홉스봄(Eric John Ernst Hobsbawm, 1917~)의 자서전 <미완의 시대>를 보면‘집단 황홀경’을 분석하고 설명한 내용이 있다. 홉스봄은 집단 황홀경을 분석하면서 섹스와 대중시위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육체적 경험과 맹렬한 격정이 가장 깊이 맞물린 행위로 섹스와 대중시위를 들고 있다. 섹스는 개별적 경험이고 대중시위는 집단적 성격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섹스의 절정이 순간에 그치지만 대중시위에서 맛보는 희열은 몇 시간이나 이어진다는 점에서 시위가 섹스보다 났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황홀경 차원에서 설명한 것인데 파편화한 개별자의 삶을 강요하는 체제에서 집단과의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힘이 공산주의에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파편화된 개별자의 삶을 강요하는 체제라는 점에서 1930년대 독일은 극도의 위기를 맞이한 시대였다. 그렇지만 히틀러의 등장과 더불어 공산주의보다는 파시즘이 대세였던 시대였다. 바이마르공화국이 몰락하고 있었고 공화국의 모든 것이 파국을 맞이하고 있었다. 전 세계는 경제공황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 모두가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 타고 있었다. 홉스봄을 포함한 많은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집단과의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공산주의에 희망을 걸었는데 히틀러는 새로운 시대를 원하는 대중들을 파시즘으로 이끌었다. 뮤지컬 <카바레>에는 이러한 시대가 낳은 허약한 인간의 다양한 군상들이 등장하여 시대의 아픔을 철저히 그려내고 있다. 지극히 감각적이지만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가 공존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카바레>는 관능성과 지성, 뜨거움과 차가움, 육체와 정신 등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유희 장소인 카바레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육체적 탐욕이 넘쳐나는 도시 베를린의 또 다른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일면 집단 황홀경에 빠진 나치시대의 암울했던 시대분위기와 함께 그 이면 속에 반대급부로 들끓었던 성적인 쾌락과 유희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다룬 것이 바로 뮤지컬 <카바레>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는 미국사회의 변혁과 더불어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극단적인 자유사상과 기성문화에 대한 비판, 반전사상, 인종적이며 계층적인 갈등, 그리고 보수적인 지배문화에 대한 강한 반발로 1960년대는 히피문화가 주류를 이루었다.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이들 히피 문화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주요 도시에 파급되어 보수적인 사회기저를 뒤흔들었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번져나갔다. 그러나 비슷한 사회의 변혁을 겪은 1930년대 독일의 문화는 1960년대의 미국 문화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30년대 베를린은 나치라는 집단이 만들어낸 집단과의 일체감-즉 게르만 민족의 단결과 우월성-이 중요시되기도 했었지만 퇴폐와 향락으로 "전 세계 모든 도시 중 가장 들떠있는 도시"이기도 했다. 한편으론 편협한 사회에 대한 독설과 비아냥거림이 가득했으며 모든 형태의 성적 행위들이 공개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도시였다. 또한 카바레라는 장소도 오늘날 가볍게 스트레스를 푸는 일반적 개념의 유희장소와는 달랐다. 카바레의 쇼걸들은 성적표현의 자유를 누리며 자유롭게 공연할 수 있었으며 매춘부들은 카바레 손님들 옆에 앉아 술을 팔며 잡담을 했고 누드댄서들은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추거나 공개적으로 마약을 즐기기도 했다. 손님들과 배우들이 섹스를 위해 객실로 향하는 것도 물론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성향을 반영한 <카바레>는 사회성 깊은 메시지와 주제의식으로 1960년대 브로드웨이가 원하는 뮤지컬의 전형이 되었다.
뮤지컬 <캬바레>의 탄생은 1934년에 발표된 소설로부터 시작된다. 미국인 크리스토퍼 이셔우드(Christopher Isherwood)의 <베를린이야기 The Berlin Stories>를 원작으로 1952년 독일 극작가 요한 반 드루텐(John van Druten)에 의해 <나는 카메라 (I am a Camera)>라는 희곡으로 각색되었으며 1966년 해롤드 프린스(Harold Prince)의 연출로 뉴욕에서 초연되었다. 초연이후 현재까지 1만회에 가깝게 공연되고 있다.
<카바레>에는 변혁의 시대를 맞은 평범한 사람들의 아픔이 그려지고 있는데 그 과정에 MC, 클리프, 샐리, 슐츠 그리고 슈나이더 등 나약한 인간의 군상들이 등장한다. 3류 카바레의 사회자이면서 전능한 존재인 MC. 서사극의 해설자처럼 등장해서 극중 인물들의 모든 갈등과 변화를 파악하고 관객의 입장에서 응시한다. 하지만 이 인물도 나치치하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비아냥대고 조소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모든 상황들을 비판적인 눈길로 바라보게 만드는 해설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클리프는 등장인물 중 가장 지성인이며 냉철함을 지닌 사람이다. 미국인 극작가로 전 세계를 떠돌면서 글을 쓰는 그도 사실 나치가 점령한 베를린의 변혁 앞에서는 무기력한 지식인이자 이방인으로 그려지고 있다. 사회 문제에 있어서 수동적이며 방관자이고 그 상황을 단지 피하기만 하는 전형적인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역시 3류 카바레의 가수 샐리와 하숙집 주인 슈나이더 또한 사회변혁에 맞서기 보다는 익숙해진 삶에 안주하기 위해 사랑마저 버릴 수밖에 없는 힘없는 존재들이다. 슐츠는 유태인이란 이유로 사회의 억압에 모든 삶을 잃어버리고 마는 시대의 희생양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렇듯 1930년대 베를린은 나치라는 집단과의 일명 ‘집단 황홀경’으로 일체감이 팽배했던 도시였지만 한편으론 성적인 쾌락과 유희로 들끓었던 도시로 명작 <카바레>의 무대가 된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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