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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이야기 250] 조득남(趙得南)장군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10월 22일


 김창종 수필가

 

조득남(趙得南)장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전사한 조득남 장군을 만나 보기로 하자. 본관은 한양이며 화현면 운악산 아래에서 성장했다. 경기오악(京畿五岳, 북악, 관악, 송악, 감악, 운악)의 하나인 신령한 운악산(雲岳山) 아래에서 성장한 조득남 장군은 운악산의 기를 받은 충신이며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용기있는 무신(武臣)이었다.

 

내 고향 포천 출신의 삼충신(三忠臣)의 한분이다. (포천의 삼충신→유응부, 권종, 조득남) 충신의 칭호를 받고 충신각을 하사받고 홍살문을 세운 가문은 조선조 최고의 영광이었으며 대대로 음사(陰仕)로 임금의 은전(恩典)을 입었으며 충신각이 있는 마을은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어린 눈으로 존대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한 조득남 장군은 만호(萬戶)의 벼슬을 하였다.

 

선조 27년(1594년) 운악산 밑에서 성장한 조득남님은 인조조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임금을 강화까지 호종한 충신이었다. 인조8년(1630년) 유흥치의 난과 가도의 난에 추정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1636년(인조14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인조임금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서 큰 공을 세웠다.

 

당시, 수어사인 이시백(李詩白)장군의 관하에 자원출정(自願出征)하여 남한산성 북문 밖에서 격전을 전개하여 적 호병(胡兵)을 다수 살해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래서 인조 임금께서는 조득남님에게 술을 하사하고 또 공조정랑의 벼슬을 내렸다. 그런데 다음 날 다시 출전하여 전투를 벌리다가 격전 끝에 끝내 전사했다. 인조 임금께서는 슬퍼하여 수포(袖布)를 하사하여 시체를 싸게 하고 북문 밖에 임시로 가 매장했다.

 

 

병자호란이 끝나자 화현면 화성리 고향으로 옮겨 장사를 지냈다. 현종 6년(1664년) 조정의 신하들이 조득남 장군의 용기와 나라 사랑의 정신 그리고, 산신성인(殺身成仁)의 충성심을 높이 평가하여 상소한 끝에 충신각(忠臣閣)을 세원 표창하도록 임금께서 명했다. 내 고향 포천출신으로 조득남님 같은 훌륭한 충신이 있었다는 사실은 큰 영광이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포천의 문화인들은 조득남 장군을 위한 기념사업이나 전공을 기리는 문화사업에 큰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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