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우영(대진대 교수, 연출가)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나 동화를 보면 인간의 현실적인 문제들이 의인화되어 재미있게 묘사된 작품들이 있다. 1940년대에 만들어진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에서도 냉혹한 인간세상의 단면을 찾아볼 수가 있다. 디즈니의 뮤지컬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명작동화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1940년대까지의 작품들에서는 평범한 동물들을 내세워 인간세상의 모습을 의인화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들 작품들 속에는 영웅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모두가 부모부재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한편으론 특이한 외모 때문에 이용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피노키오(Pinocchio)>, <아기 코끼리 덤보(Dumbo)> 그리고 <밤비(Bambi)>는 모두가 의인화된 주인공들이며 인간 세상의 냉혹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잘 묘사해 주고 있다. 물론 이들 애니메이션 모두가 순수하게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배금주의나 거짓말 그리고 왕따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사회문제가 되는 이슈들이 이들 애니메이션 속에 녹아있는 것이다.
1950년대 만들어진 애니메이션들은 애니메이션의 황금기라고 부르는 1940년대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사회문제들은 사라졌고 요정이야기와 판타지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먼저 1950년과 1959년에 각각 만들어진 <신데렐라(Cinderella)>와 <잠자는 숲속의 공주(Sleeping Beauty)>는 요정이야기(fairy tale)이다. 요정이야기라고 해서 반드시 요정(fairy)이 나온다거나 요정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단지 놀라울만한 요소와 사건이 포함되어 있으면 요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신데렐라>는 월트 디즈니사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만든 장편애니메이션이었다. 1938년에 만들어진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이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박스 오피스에서 그다지 빅 히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재정난이 가중된 상황에서 <신데렐라> 제작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당시 3백만 달러를 들여 만든 이 작품이 실패한다면 디즈니 스튜디오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마치 1927년 뮤지컬 <재즈 싱어(Jazz Singer)>가 워너브라더스(Warner Bros.) 영화사를 사활의 기로에서 살린 것처럼 <신데렐라>도 박스오피스의 대히트를 기록하며 디즈니 영화사가 21세기 까지 지속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2002년에는 <신데렐라>의 해피엔딩 이후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데렐라II>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물론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하여 궁궐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1951년에 개봉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는 유명한 장편동화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인데 원작에 대한 훼손이 심하다는 평가와 함께 관객의 미온적인 반응과 평단의 혹평으로 박스오피스에서 대실패를 기록했다.
이후 만들어진 <피터 팬(Peter Pan, 1953)>은 현재까지도 많은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즐겨보는 애니메이션으로 디즈니의 명작들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오늘날 무대 뮤지컬로도 자주 공연되기도 하며 극영화로도 여러 번 제작되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피터 팬>은 1940년대 초에 <밤비> 다음으로 만들 예정이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제작은 연기되었고 1953년에 만들어졌을 때는 초기 오리지널 캐릭터와는 다른 인물들이 만들어졌다. 아이들의 강아지 나나(NaNa)도 오리지널 아이디어에서는 함께 네버랜드로 가지만 1953년에 만들어졌을 땐 날아가는 아이들을 밖에서 줄에 묶인 채 바라보기만 한다. 엔딩도 오리지널보다 훨씬 따뜻하게 만들어졌다.
<레이디와 트램프(The Lady and the Tramp, 1955)>는 디즈니의 15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동물이 주인공인 영화다. 1940년대에 <밤비>, <덤보> 처럼 동물들이 주인공인 작품들이 있었지만 <레이디와 트램프>는 좀 차별화되는 작품이었다. 개에 대한 애정과 함께 개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고 만든 영화다.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시네마스코프-와이드스크린을 적용했다. 스파게티를 먹다가 서로의 입술이 닿는 장면은 매우 로맨틱한 장면으로 유명한데 개봉 당시에 혹평을 받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디즈니의 명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와 <신데렐라>와 같은 종류의 애니메이션으로 역시 요정이야기이며 두 작품들과는 차별화된 비주얼 스타일로 만들 예정이었다고 한다. 35mm 필름과 70mm 필름으로 함께 만들어졌는데 결과는 엄청난 재정적 손실을 가져왔다. 6백만 달러를 투입한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박스오피스에서 제작비의 절반만을 건질 뿐이었다. 그 참패의 이유로는 매우 느린 진행과 함께 인물의 성격구축이 거의 없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도 뛰어난 그림과 음악스코어 그리고 와이드 스크린 제작이라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오늘날 재평가 되면서 디즈니의 명작중의 하나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결국 1950년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이룩한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그대로 답습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매우 혁신적인 방법으로 제작되어 당시보다는 오히려 오늘날에 더욱 인기를 얻으면서 재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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