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머리가 가렵구나. 흰머리 좀 뽑아라. 정수리가 가장 가려우니 정수리부터 뽑아다오.”어릴 적 어머니는 저에게 늘 흰머리를 뽑아달라고 주문을 하셨습니다.
흰머리 때문에 머리가 가렵다 하시며 뽑아달라는 말씀에 저는 늘 어머니 머리맡에 앉아서 흰머리를 한 올 한 올 찾아내어 족집게로 뽑아드리곤 했어요.
“흰머리는 유전이라서 너도 이담에 마흔 살이 넘으면 흰머리가 많이 나올거야. 엄마 닮아서...”이 말씀도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수시로 뽑아드리던 흰머리가 몇 년이 지나자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져서 도저히 손으로 뽑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자 어머니는 염색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드디어 흰머리 뽑기에서 저는 해방이 된 것이죠. 그리고 세월이 지나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살다보니 어느새 남편의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남편의 머리도 제가 뽑아주어야 할 상황이 된 것이죠. 다시 남편의 머리를 한 올 한 올 넘겨 가며 흰머리를 찾아내어 족집게로 뽑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하기를 몇 년이 지나자 이제 남편의 머리도 염색을 해야 했어요. 처음엔 제가 염색을 해주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잘 안 해주었더니 꼼꼼한 저희 둘째 딸에게 그 임무가 주어졌어요.
성격이 좋은 딸아이는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아빠 머리에 염색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제 머리에도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한 올 한 올 나오기 시작하는 흰머리를 도저히 그냥 보아 넘길 수가 없었죠. 그래서 거울을 보고 혼자 머리를 뒤적거리며 갖은 인상을 다 써가며 흰머리를 뽑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곤 했죠.
그러기를 몇 개월이 지나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마에 주름살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거 흰머리 몇 개 뽑다가 주름살이 생겨서 더 늙게 생겼네... 어떻게 하나...”고민을 했더니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둘째 딸 아이가 족집게를 들고 와 제 흰머리를 뽑아주기 시작했죠.
저도 미안해서 처음엔 흰머리 한 개당 50원씩 계산해서 수고비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흰머리가 늘기 시작하니 그 비용이 감당이 안 될 지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시간당 3,000원 정도 아르바이트 비용수준으로 지불하기로 했죠. 점점 흰 머리를 뽑아야 하는 시간의 간격이 줄어들면서 그것도 부담이 되기 시작할 무렵 남편이 참견을 했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흰머리를 뽑아주는데 돈을 받고 뽑는다는 게 말이 되냐. 앞으로 그냥 뽑아드려!!”아빠의 말 한 마디에 딸아이는 더 이상 돈을 달라하지 못하고 그냥 무보수로 봉사하기에 이르렀죠.
흰머리를 뽑으면 머릿속이 시원해지면서 잠이 솔솔 잘 오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렇게 저의 흰머리는 당분간 둘째 딸아이의 손에서 뽑혀나가 저는 아직 염색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입니다. 덕분에 저는 아직도 긴 생머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죠.
저희 부부가 아이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귀지를 파내는 일이죠. 아이들이 어릴 때는 남편의 귀지를 제가 파내 주었습니다.
옛날 연애할 때부터 제가 항상 해왔던 일이거든요. 그런데 저희 큰딸이 귀지를 파내기 시작한 다음부턴 남편의 귓속도 큰 딸아이가 보기 시작했어요.
저보다 아프지 않게, 부드럽고 섬세하게 잘 파내 주어 남편이 큰딸에게 주로 귀 파내는 일을 맡기기 때문이었죠.
저도 큰딸에게 귀지를 파라고 시켜봤는데 정말 시원하게, 간질간질 기분 좋게 잘 파내 줍니다. 저절로 잠이 솔솔 오죠.
그렇게 둘째 딸에게 머리를 맡기고, 큰딸에겐 귀지를 파내게 하고 있으면 세상 모든 시름이 다 잊혀질 정도로 기분이 좋고 행복합니다. 나른한 오후에 낮잠을 즐길 수도 있구요.
그러나 귀지를 파내는 일은 큰딸이 대학엘 들어가고 서울에 나가 있으면서 중단되었습니다. 많이 아쉬웠는데 큰딸이 요즘 집에 내려와 당분간 쉬고 있습니다. 다시 귀지를 팔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죠. 저는 오늘도 큰딸에게 귀지를, 작은 딸에게 흰머리를 보게 하고 나른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는 낙인 것 같아요.
여러분!! 잠시 힘든 일 접어두시고 아이들에게 흰머리 좀 뽑아 달라, 귀지도 파달라고 시켜 보세요. 세상에 부러울 게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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