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맏이

휘영청 달이 밝다. 추석연휴가 시작되자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과 대목을 보려는 장사꾼들의 손길은 굿 당의 신명난 무속인처럼 바쁘고 제사준비를 해야 하는 여인네들의 손길은 쉴 틈이 없다.

 

옛날부터 맏딸은 살림밑천이요, 맏이는 부모님 대신이라는 말이 중년의 나이가 되고 보니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나는 함안이씨 집안의 작은집 맏며느리이지만 큰집의 형님은 종손의 맏며느리인지라 그 많은 제사상과 손님 치르기가 큰 잔치를 치르는 격이니 매년 2회씩 그 행사를 한다는 것은 나라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난 작은집의 맏이로 시집을 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살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종손의 맏며느리인 형님이 대단하다는 존경심도 생긴다. 한번은 “형님, 힘들지 않으세요?” 하고 물으니“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내가 선택되었으니 이왕이면 웃으면서 하면 좋지”라고 하신다. 아하! 이래서 맏며느리감이 따로 있구나 하고  실감을 하게 된다.

 

우리 집 친정은 카톨릭 집안이기에 추석날 제사를 성당의 미사로 대신한다. 하지만 며느리 가 없는 친정집에 시집간 딸들의 방문은 손님 일뿐이기에 엄마가 항상 힘드시다. 그래도 항상 가보면 먹을 음식이 한가득 하다. “엄마 혼자 이걸 다 하셨어요?”하고 물으니“아니, 큰 언니가 미리 와서 장도 봐주고 용돈도 주고 갔단다”라고 한다. 그랬다! 며느리가 없는 친정 집에 동생들이 찾아오면 편히 쉬고 먹고 제부들에게 술상을 봐서 오붓한 명절을 보내도록 맏딸인 큰 언니가 미리 준비를 해왔던 것이다.

 

언니는 무슨 때만 되면 항상 엄마의 운전기사가 되고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던 것이다. 같은 딸이지만 넷째 딸은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을 챙기는 것을 보면 맏딸인 큰 언니는 나와 다른가보다.

 

부유하지 못한 집안의 맏아들은 마음이 부자여야 한다.  부모님도 생각해야 하고 동생들이 잘 살아 주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동생들이 힘들 때면 돈이 많아서 보태줄 수 없음에  어깨를 두드리며 손을 잡아주지만 정작 본인이 힘들 때면 혼자서 견뎌야하는 자리이기에 마음이 넓고 깊어야 한다. 그런 맏아들은 부모님에겐 든든한 기둥이 되고 동생들에게는 기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둥지가 된다. 그 기둥이 바로 서 있다면 그 집안의 형제자매 손자 손녀들까지도 행복한 명절을 보낼 것이다.

 

딸 다섯인 우리 집의 맏사위였던 큰 형부는 기둥뿌리가 흔들거린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학생인 처제가 4명이었고, 아들과 딸이 4명이니 모두 8명을 키워 시집 장가 보내야하는 처지였으니 그 얼마나 부담이 되셨을까?  장인어른이 연로하셔서 집안의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아들노릇을 해야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가끔“저 녀석들 어서 빨리 보내고 숙제만 끝나면 처제 늦둥이 아들도 키워줄게”하면서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신다. 

 

처제들을 모두 시집보내다보니 이력이 나신 걸까?“고마워요, 형부”라고 답하지만 언젠가 어깨를 보니 많이 구부러졌음을 보았고 깊은 그 마음만 받을 뿐이다.

 

맏이는 다르다. 소리 없는 활약이 있기에 둘째도 셋째도 그리고 막내도 부모님과 즐거운 명절을 보내는지 모른다.  묵묵히 그 자리에서 힘든 것을 내 몫이려니 생각하고 그 일을 하고 있는 종손의 맏며느리가 있기에, 그리고 집안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가족들의 화합을  준비하는 맏이들의 넓고 깊은 마음은 둘째나 셋째가 따르지 못하는 부분임을 시인한다. 부디 맏이들에게 조상 님의 돌보심이 있기를 둥글둥글 커다란 달님에게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