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진원(閔鎭遠)은 인현왕후의 오빠인데, 윤지완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그때 윤지완은 정승으로 사옹원(司饔院)도 함께 책임지고 있었다. 어느날 윤지완은 새벽 일찍 임금의 부름을 받고 대궐에 나갔다가 관사에서 아침식사를 하였다. 마침 사위 민진원도 한림원에서 숙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윤지완은 아침을 먹고 난 후 밥상을 물리다가 생전복 한 그릇을 보고 문득 밤새 고생한 사위를 떠올렸다. 그리하여 윤지완은 남은 생전복을 거두어 사위에게 보내면서 말을 전했다. “생전복이 아주 별미이니 한번 맛보도록 하라.” 그러나 전복을 받은 민진원은 이를 다시 돌려보내며 말을 전하였다. “제 밥상에도 생전복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니 다시 돌려보냅니다.” 윤지완은 그 말을 전해 듣고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사옹원을 책임지고 있는데 생전복이 한림원으로 갔다는 보고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윤지완은 경연 자리에 나아가 임금께 아뢰었다. “신은 바야흐로 사옹원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신의 사위 민진원이 마침 한림원 숙직을 하고 있어서 신의 밥상에 놓았던 생전복을 보내어 맛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위의 밥상에도 생전복이 올라 있었습니다. 신의 사위는 중전마마의 오빠이니 누군가 사사로이 생전복을 꺼내 그의 밥상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신은 사옹원을 총괄하는 사람으로 사사로이 임금의 인척에게 생전복을 먹였으니 큰 죄를 지은 것입니다. 청하옵건대 신의 벼슬을 깎아주십시오.”
윤지완(尹趾完) 1635년(인조 13) ~ 1718년(숙종 44). 본관은 파평이며 자는 숙린(叔麟). 호는 동산(東山)이다. 1657년(효종 8) 사마시를 거쳐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요직을 거쳤다. 1675년(숙종 1) 유배중인 송시열을 변호하다가 남인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박탈당하였다. 1680년 남인이 실각하자 다시 등용되어 경상도와 함경도 관찰사를 지냈다. 이후 어영대장, 예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했으나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재집권함에 따라 유배되었다. 1694년 소론이 등용됨에 따라 다시 관직을 얻어 우의정을 지냈다. 청백리로 뽑혔으며,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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