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항이 선전관(宣傳官)으로 있을 때였다. 그날 대궐에 들어가 숙직하였는데 영조38년(1762)에는 금주령이 내려져 있었다. 그날 밤, 영조가 숙직하는 선전관을 부르라고 명하였다. 유진항이 명령을 받들어 들어가니 임금이 커다란 칼 하나를 하사하면서 말했다. “듣건대 여염집에서 아직도 술을 많이 빚는다고 한다. 너는 이 칼을 가지고 나가 사흘 내로 술 빚는 사람을 반드시 잡아들이도록 하라. 만일 잡아들이지 못하면 네 머리를 대신 바쳐야 할 것이다.” 그는 어명을 받들고 물러나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어디에 가서 술 빚는 자를 잡아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였다. 소매로 얼굴을 가린 채 고민에 빠져 있자 아내가 물었다. “어찌하여 이렇게 의기소침하여 계십니까?” 아내가 묻자 유진항은 퍼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유진항은 시치미를 떼고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것은 당신도 익히 알 것이오. 술을 마시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으니 목이 말라서 죽을 지경이오.” 아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날이 저물면 술을 구할 수 있으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밤이 되자 아내가 은근히 말했다. “술을 파는 집을 알고 있는데 제가 직접 가지 않으면 사올 수가 없어요.” 아내는 술병을 차고 치마로 얼굴을 가린 채 문을 나섰다. 유진항이 몰래 뒤를 따라가니 아내는 한 초가집으로 들어가 술을 사 가지고 나오는 것이었다. 유진항은 얼른 집으로 돌아와 아내가 사온 술을 달게 마시고 다시 사오게 하였다. 아내가 또 그 집에 가서 사 가지고 왔다. 이번에는 유진항이 술병을 차고 일어나자 아내가 괴이하게 여겨 까닭을 물었다. “이 밤중에 갑자기 어디를 가십니까?” “이 귀중한 술을 어찌 나 혼자 마시겠소? 친구와 함께 마시려고 그러오.” 유진항은 곧 집에서 나와 아까 보아두었던 술집을 찾아갔다. 그 집에 들어서니 몇 칸밖에 안 되는 누추한 집이라 비바람도 가리지 못할 정도였다.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자 한 선비가 등잔에 불을 밝힌 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유진항을 보고 괴이하게 여겨 물었다. “깊은 밤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유진항이 대뜸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어명을 받들고 왔소.” 그러면서 그는 허리에 찬 술병을 내 놓으며 말했다. “이 술은 이 집에서 산 것이오. 이미 나라에서 금주를 명했으니 나와 함께 가야겠소.” 선비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법을 어겼으니 어찌 벌을 마다하겠습니까? 하지만 제게는 늙은 어머니가 계시니 인사나 하고 가게 해주십시오.” 유진항이 허락하자 선비는 어머니를 찾아뵙고 말하였다. “제가 이미 선비는 굶어죽을지라도 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말씀 드렸는데 어머님은 끝내 제 말을 듣지 않고 술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이제 소자는 붙잡히게 되었으니 곧 죽을 것입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목을 놓아 통곡하며 말하였다. “내가 몰래 술을 빚은 것은 재물을 탐내서가 아니라 자식을 굶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것은 다 내 잘못이니 이를 장차 어찌할꼬?” 선비의 처가 그때 잠에서 깨어나 사태를 알아채고는 가슴을 치며 울기 시작했다. 선비는 아내를 달래며 말했다. “이미 이 지경이 되었으니 운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소. 다만 나에게 아들이 없으니 내가 죽은 후 당신은 내가 살아 있을 때처럼 어머님을 봉양해 주시오.” 선비가 나오자 유진항은 몹시 불쌍한 생각이 들어 물었다. “어머님의 춘추가 어떻게 되오?” “일흔이 넘었습니다.” “아들이 없소?” “아직 없습니다.” 유진항이 탄식하며 말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지구려. 나는 두 아들이 있고, 또 부모님을 모시고 있지도 않으니 차라리 내가 대신 죽겠소 어서 술병을 모두 내오시오.” 선비가 집 안에 감춰두었던 술병을 모두 내오자 유진항은 선비와 함께 진탕 술을 마셨다. 그러고는 술병을 모두 깨뜨려 그 조각들을 뜰에 묻었다. 술병 조각을 모두 묻고 나자 유진항은 임금이 하사한 칼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것을 팔아 어머니를 봉양하도록 하시오.” 그러고 나서 유진항은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은 임금이 정한 마지막 기한이었다. 그가 대궐로 들어가 가만히 처분을 기다리고 있자 임금이 물었다. “술을 빚은 자를 잡아왔는가?” “잡아오지 못했습니다.” 임금이 노하여 말했다. “그럼 네 머리를 내놓겠다는 것이냐?” 유진항은 엎드려 아무 말도 못하였다. 결국 그는 제주도로 귀양을 떠났다. 그후 10여 년이 지나 그는 복직되어 초계군(草溪郡) 수령이 되었다. 그는 수년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그때 갑자기 암행어사가 출현하여 여러 사람을 잡아들이고 마침내 형장을 베풀려고 하였다. 유진항이 문틈으로 살펴보니 암행어사는 바로 술을 빚어 팔던 선비였다. 유진항은 재빨리 뛰쳐나가 마당에 엎드렸다. “어사또께서는 이 몸을 모르시겠습니까?” “내가 그대를 어찌 알겠소?” “자세히 보십시오. 혹시 술을 빚어 팔다가 선전관에게 발각되어 함께 술을 마시며 칼을 받았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제야 암행어사는 유심히 유진항을 살펴보았다. “그때의 선전관이 바로 저입니다.” 어사는 급히 일어나 유진항의 손을 잡고 눈물을 비 오듯이 흘리며 말하였다. “바로 내 은인이시구려.” 어사는 곧 형틀을 치우고 사람들을 모두 석방하였으며 밤이 새도록 그와 어울려 술을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 훗날 유진항은 벼슬이 통제사까지 이르렀다.
유진항(柳鎭恒) 1720년(숙종 46) ~ 1801년(순조 1).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수성(壽聖)이다. 1753년(영조 29)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으며 이어 금군별장(禁軍別將), 훈련원도정(訓鍊院都正), 경상좌수사, 경상좌병사, 회령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삼도수군통제사 등을 거쳐 우포도대장에 이르렀다. 1799년(정조 23)에 나이 80세가 되자 조정에서 숭록대부(崇祿大夫)로 올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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