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은 청ㆍ홍ㆍ황(靑(남색)ㆍ紅ㆍ黃)의 원색과 무색이라고 하는 백색을 좋아했다. 그 중에도 청(남색)ㆍ홍색을 더욱 좋아했던 것 같다. 신랑이 혼인을 청하는 납채(納采)로 쓰이는 청실 홍실을 비롯해서 대궐이나 절 또는 큰 기와집 등의 단청(丹靑)과 채색에도 그랬다. 이것을 잘 입증하는 것이 단청(丹靑)이라는 용어다. 그리고 우리 방치레의 하나인 보료도 청ㆍ홍색으로 돼 있고 옛날 여인네의 옷에서도 홍의 청상(紅衣靑裳)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단적으로 잘 나타난 것이 태극기의 무늬다. 그러니까 이 둘은 한국의 전통적인 색이라 할 만하다. 대조적인 특징을 가진 이 두 색은 항상 둘이 함께 쓰여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홍은 양이나 남성, 청은 음이나 여성을 상징한다. 음양의 상징이 태극기의 예이며, 남녀의 상징이 납채의 청실 홍실 예다. 그러나 이 두색은 이 밖에도 많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쓰였다 .청이 평화를 상징하면서 소극적이고 겸허하면서 현묘하며 은근한 느낌을 주는가 하면 홍은 투지적이고 적극적이고 정열적이면서 발랄하며 화려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쓰인 홍은 눈부신 빨간 색이 아니라 은근한 느낌을 주는 훈색(?色)이었다. 그런데 청ㆍ홍 중에도 청이 기본 바탕이었다. 여인네의 옷이나 보료 등에서 청은 바탕색이고 홍은 그를 조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색은 청이라 하겠다 우리 민족이 이러한 청색을 좋아하는 것은 평화를 사랑하고 겸허하며 은근한 우리의 심성을 잘 대변한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특별한 경우(청자나 청기와) 외에는 청색 하나만을 쓰는 우거를 범하지 않았다. 청을 쓰는 곳에 반드시 홍을 대조시키고 있다. 대조와 파격에 의한 조화미라고나 할까? 그러면 홍은 어떠한 심성미를 대변하는가? 홍은 어디까지나 청과의 조화를 위해 쓰였기 때문에 청색에 의해 본래의 특징이 약화되어 투지적이고 정열적이고 화려한 느낌보다는 강한 의지력을 타나낸다. 이른바 단심(丹心)이라고나 할까? 그 예가 바로 포은의 단심이요, 춘향과 소월의 단심이며, 아리랑에 나타난 우리 민족의 단심인 것이다. 이것을 일러 한국인의 ‘끈기’라고 할까? 청색의 바탕위에 홍색의 첨가는 겉으로 보기에 소극적이고 부드러우며 어리고 겸허한 듯하나 좌절하지 않는 한국인의 강한 의지력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좀더 화려하게 나타낼 때는 청ㆍ홍색에 황색(黃色)이 추가되어 쓰인다. 그 예가 바로 부채와 대문의 무늬나 색동 저고리 등이다. 황색은 해나 황금과 영원 불멸을 상징하는 색깔로 밝고 명랑하며 가벼우면서 화려한 느낌을 준다. 그 중에도 대표적인 특징이 화려함이다. 그리하여 임금의 곤룡포(고종 이후)와 신부의 옷이나 저고리며 단청 등에 많이 쓰였다. 그러니까 우리 민족이 많이 써 온 색이 청ㆍ홍ㆍ황 삼색이나 그 중에도 대표적인 전통색은 ‘청’이다. 이 청색이 가장 아름답게 나타난 것이 고려청자다. 고려청자의 예술미는 선도 뛰어나지만 색 또한 뛰어난 데 있다. 청자의 색은 마치 비가 갓 개인 후의 먼 산마루 위에 비치는 맑으면서도 아련하고 우아한 하늘빛(牛後晴天色)과 같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의 낭만과 심성미이며 그 심성미는 우리 민족의 조촐하고 평화로우며 은근한 기품의 발현이다. 임의 생각이 깊이 잠겨 있는 여인네같이 고요한 아름다움, 맑고 깨끗하나 그윽하고 다소곳한 겸허는 화려한 푸른색을 내뿜는 중국의 청자(靑磁)와는 완연히 구별되는 비색(翡色)으로, 이는 한국인의 은근한 정서를 잘 반영한 우아미의 결정체다. 이 청색이야말로 한국 하늘의 빛이며 불교의 영향을 받아 자비롭고 사색적인 고려 사대부들의 선(禪)적인 심성의 투영이다. 이 밖에도 우리 민족은 백색을 좋아해서 백의민족이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다. 백색은 흑색과 대조되는 것으로 청ㆍ홍ㆍ황색의 색료(色料)가 합쳐지면 흑색이 되는데 반해 이 삼색의 색광(色光)의 총화는 백색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색은 무한한 가능성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백색을 일러 모든 색의 조종이요 모태라고도 한다. 이러한 백색은 소박하고 담담하며 깨끗하고 밝으며 그윽하고 겸허하며 평화롭고 원숙한 느낌을 준다. 즉 화려하지 않으나 초라하지도 않으며, 중후하지 않으나 경박하지도 않고 명랑하지 않으나 감상적이지도 않으며 말없는 듯하면서도 정다운 무인 다정의 정취와 은근한 멋을 느끼게 한다. 청색에 비해 보다 넓고 깊고 소박하며 우아한 색이라고나 할까? 이러한 백색의 결정체가 이조 선조 백자다. 이조 백작의 백색은 고려인의 자비롭고 감상적인 선(蟬)적 심성이 투영된 고려청자의 비색(翡色)에 비해 보다 한층 세련되고 원숙된 우아한 색이다. 조선조 백자의 색은 그저 밝고 깨끗한 평면적 색이 아니라 으스름한 달빛을 보는 듯이 볼수록 그윽하고 유현하며 폭 넓은 맛을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이조 백자는 언제 어느 곳, 어떤 가구 위에 놓아도 잘 어울린다. 이러한 백자는 유교의 영향에 의한 질박 강인(質撲强靭)한 조선조의 시민적 의지의 결정체라고 본다. 백색은 여인네 모시옷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화창한 여름날 짧은 모시 적삼과 길고도 펑퍼짐하게 늘어진 모시 치마를 입은 여인이 유난히 까만 머리에 기름을 발라 단정하게 빗어 날아갈 듯 쪽을 찐 위에 파르스름한 옥비녀를 꽂고 걷는 맵시는 시원하면서도 조촐하고 깨끗하면서도 소박하며 산뜻하면서도 점잖은 은근하고 우아한 멋을 느끼게 하는 한국 특유의 멋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흰색을 좋아함도 조선조인의‘한(?)’이 승화되어 표현된 은근하고 소박한 심성의 반영이라고 본다. 그러면서도 그윽하고 유현한‘멋’은 한(?)을 승화시킨 의지력인 끈기의 발현임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 사람이 청ㆍ홍ㆍ황색의 원색을 좋아했고 그 중에도 청색을 더 좋아했으며, 그 위에 백색을 좋아함은 한국인의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소박하고 은근한 가운데 끈기가 있는 심성미를 잘 나타낸 결과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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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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