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생태도시의 조건11]물의 생태학에 흐르는 심미적 효과에 대한 사유

공면수 교수 (대진대학교 영문학과)

 

물은 자연환경과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흘러야 그 물에 힘과 활기가 생기고, 그 물의 맛도 달라지며, 농작물의 경작에도 이롭다”는 그 자체의 영묘한 생태학을 지니고 있다. 또한, 물은 졸졸 흐르는 시냇물에서 거센 폭풍처럼 울려 퍼지는 바다에 이르기까지 신비스러운 심미적 효과의 기호를 내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흐르는 맑은 물이 주변 공간과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내는 완벽한 조화는 물의 생태학에 흐르는 최고의 신비일 것이다.
  물은 보는 사람들의 눈에 제멋대로 흐르는 것 같고, 그 모양이 무정형으로 보일 수가 있다. 그러나, 어느 시냇물에서든 찾을 수 있는 소용돌이의 파장은 ‘8’자 모양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 이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는 ‘8’자 모양의 형태로 인해 물은 계속 움직이는 듯한  시각적 착시를 일으키기도 한다. 물의 소용돌이 파장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교대로 이어지는 회전으로 이루어지고, 동시에 옆에서 옆으로 움직이는 ‘8’자 모양의 무늬를 만든다. 물의 신비를 연구한 데오도 슈웬크는 리드미컬한 물의 움직임을 변화하는 조류나 부서지는 파도와 같은 다른 여러 형태의 물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슈웬크는 물의 흐름에는 그 나름대로의 정교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흐르는 물과 관련하여, “물은 계속해서 본래의 구형(求刑)으로 되돌아가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구불구불 흐르는 시냇물이든, 굽이치는 파도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든, 거세게 휘몰아치는 물살이든, 물은 형태에 상관없이 모두가 구형의 속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사실, 역사 속의 정원사들은 특정한 공간 속에 작은 폭포나 샘, 혹은 물웅덩이와 같은 자연 속에 물을 재창조하는 작업을 해 왔다. 그것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이들은 물이 제공할 수 있는 시각적, 음악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흐르는 맑은 물을 최대한 활용하여 분수를 만들었다. 처음에 분수는 신성한 정원의 한 부분으로, 천연의 샘이 흐르는 작은 석굴로 이루어졌다. 그런 분수에 장식물이라고는 신이나 정령을 기리기 위한 석조 성상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점차로 분수에 아름다운 조각상과 같은 보다 섬세하고 미적인 표현을 덧붙이게 되면서부터 그곳은 웅장한 요정의 성소로 자리 잡았다. 흐르는 물과, 부딪혀 흩어지는 물방울과,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물이 한 곳에 어우러지면서, 분수는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 듯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위안을 주는 행복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페르시아인들은 열사의 사막을 낙원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물을 적극 활용하였다. 이들은 상징적이면서도 정신적으로 다양하게 물을 활용하여 신성한 정원을 꾸민 후 그것을 예술 형태로 끌어 올렸다. 그들은 화려한 정원을 만들고, 그 정원의 한복판에는 각종 귀금속과 돌로 아로새겨진 타일을 사용하여 정교한 모양의 분수와 웅덩이를 만들었다. 이 분수대가 자아내는 신비롭고 조화로운 물소리와 영묘한 물안개의 분위기는 이들에게 신비의 장소 그 자체였다. 후에 물에 대한 존중심이 유달리 강하고 감수성이 예민했던 힌두교인들은 이러한 페르시아 양식의 분수대를 응용하여 시크교도들의 황금사원처럼 사원이나 궁전을 호수 한 가운데에 세웠다.
 일본인들도 페르시아인들이나 힌두교인들 못지 않게 물의 생태학에 예민한 감수성을 뽐내었다. 본래 일본의 정원은 섬나라 특유의 해안풍경을 본 따 만든 것이었다. 일본인들이 저마다 꾸미는 물을 이용한 정원 가꾸기는 인위적인 예술미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형식과 지형미를 그대로 활용하는 작업이었다. 초기 일본의 정원사들은 샘물이 흘러 형성된 못이나 호수에 바위 언덕을 세우는 폭포의 심미성을 중시하였다. 본래부터 주변 풍경의 일부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이들이 만든 폭포는 자연미를 그대로 유지하여 해안의 작은 만이나 절벽을 연상시켰다. 산 속에 있는 듯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에서부터 직선의 물기둥으로 떨어지는 평지의 작은 폭포에 이르기까지 폭포의 모양 또한 주변지형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그리고 그 폭포 아래에는 자연에 대한 명상과 심신 단련을 위한 깨끗한 연못이 언제나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명상을 하며 오랜 시간을 연못에서 보낼 수 있도록 돌계단도 설치되었다. 자연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본뜬 돌계단은 정원과 연못을 연결시키는 가교역할을 하는 셈이다. 폭포라는 한 공간 속에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심미적 효과가 창출되고 있는 것이다.
옛 선인들은 물이 차지하는 정신적인 가치에 따른 숭배의식에 그 의미를 두었다면, 오늘날 현대인들은 물에 대한 경관학적 가치를 더 중시한다. 현대인들은 “자연 그 자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극히 표피적인 경관학적 인식에 따라, 물의 생태학에 흐르는 심미적 효과를 자신들의 생활공간 속에서 직접 추구하려 한다. 삶의 스트레스와 피로감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맑은 물의 조화로운 흐름만큼 삶의 위안거리가 없다는 점에서 물의 리드미컬하고 자연스런 선회의 움직임에 대한 현대인들의 심미적 욕구는 앞으로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생태도시는 이렇게 물의 생태학에 흐르는 심미적 효과를 최대한 살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