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는 문인들이 문학의 근본 품성보다는 본질에서 변질되어 파생된 곁가지에 더 관심과 매력을 느끼는가 보다. 그것은 문학이 포용하는 미적 다양성 때문이 아닐까. 문학이란 결코 우리의 지성과 지식 내지는 다른 어떤 야심으로 정복되지 않으며, 그렇다고 인간의 감성으로도 쉽게 함락되지 않는 무한한 창작의 비밀이 그 안에 있다. 다만 인간의 반복된 학습으로 창조된 신화일 것이며 또 그것을 깨트려 새로운 창작의 질서를 가꾸어 내는 것이다. 그것이 문학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문학적 행위가 인간의 허황된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찢고 까불러 대는 공허한 변명이 되어서는 안된다. 글[詩]쓰기의 올바른 바탕은 말(언어)이 시(詩)이고, 시가 곧 인간이면 족한 것이다. 시인의 눈은 시퍼런 칼날을 세우고, 시인의 손은 불의를 향하여 돌멩이를 들어 시위를 당길 줄 알아야 한다. 시인의 연기(煙氣)가 어디 담배 밭의 떡잎이던가. 시인이 손으로 쓴 시는 앞을 보고 쓰지만, 시인이 발로 쓴 시는 뒤를 보며 쓴다. 또한 문학의 길에는 지도가 없으며 이정표가 없다. 작품[詩]을 가득 광주리에 담아 보라. 시의 값은 정가가 없다. 헐값으로 팔거나 고가(高價)를 매기거나 공짜로 주어도 좋을 일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길은 끝없이 걸어서 항시 하늘과 맞닿는 지평에서야 하며 그때 비로소 하늘과 인간과 자연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땅을 밟고 흘러온 시냇물이 물레방아를 열심히 돌릴 때 우리 안방의 불빛이 얻어지는 것처럼 창작의 길은 부단히 샘물을 긷는 것이다. 문학의 정신적 에너지의 원천에 미(美)의 물고를 트는 일이며 서둘러 아르티장(artisan)에서 탈출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문학은 인간의 이해관계를 주어진 말(언어)로 아름답게 풀어내어 사람의 궁극적 행복에 이르게 함이, 문학이 요구하는 위대한 숙제인 동시에 자기 성찰이며 결국은 인간 탐구의 길이 되는 것이다. 문학은 결코 인간의 산술로 풀어지지 않는 깊고 오묘한 샘이다. 그래서 문학의 길(시인의 길)이란 자연의 생명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 드는 인간으로의 객(客)이며 신앙적 수도자가 된다. 곧 영원한 미학(美學)의 순례자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문학의 길(시인의 길)이란 철탑 위의 십자가의 상징도 아니요, 하늘의 북두칠성도 아니며, 네거리의 신호등도 아닐 것이며, 샛길로 빠지는 화살표는 더욱 아니다. 오로지 시인(詩人)이어야 한다. 그럼, 자작시 <사과> 한 편을 감상해 보자.
오늘 비는 바람과도 일을 하다가 흙이 침실이다가 거리가 되어 우산이 되다 살이 되어 옷을 벗는다 물이 된다 숲 저쪽에는 물이 익는다 비로소 아침이다 - <사과> 전문 - 이제 가을이 올 것이며 땡감은 반드시 익을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