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사내가 서 있던 실내는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비교적 복도가 긴 통로에 사람들이 생각을 기웃거리며 재미있게 호기심을 뒤적거렸다. 갑자기 한 여인의 입에서 빨간 풍선이 터졌다. 작대기처럼 사내는 흩어진 풍선 조각들을 그냥 밟고 지나갔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이는 어느 날 한 사내의 일기장을 훔쳐본 이야기 대목의 일부분이다. 사람은 연극을 위하여 무대에 서지 않는다. 다만 밥을 위해서 들판에 서며, 바다에 나가며, 때로는 사람의 똥지게를 지며 살아지는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은 모두가 그렇고 그렇게 살아간다. 늘 사람의 길에는 함정과 돌부리와 유혹들이 마중 나와 사람보다 앞서가거나 혹은 사람의 옷깃을 꺾기도 한다. 에던에서 하와는 아담에게 사탄(뱀)의 유혹을 부추겨 신명(神命)을 거역케 했다. 그것이 사람의 원죄(原罪)가 아닌가. 앞서 잠깐 묘사한 일기장속의 사내는 어느 화창한 날에 한 여인으로부터 남근(男根)모양으로 빚어진 찻잔 한 셑트를 선물로 받으며 뒷동산에 봄불을 지른다. 불은 마을로 번져 타들어갈 때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소낙비가 내려서 이내 불은 꺼진다. 이 또한 비록 한 사내의 일기장 속 장면이지만 시적 상상력과 남녀간의 에로스적 본능을 사회적 통념의 거울을 보며 이성적 갈등 구조와 고뇌 속에서 극복해 가는 사내의 냉정과 열정을 인상 깊게 엿들었다. 남의 일기장을 엿듣는 것은 교양 있는 일이 아니지만 내 삶의 막역한 동반자이기에 책임질 수 있다. 그렇다. 때로는 여자가 가정의 빗자루와 그늘로 사는 게 아니라 더러는 밖의 청솔가지를 꺾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싶기도 한가 보다. 여자는 가끔 남자의 살갗에 가시를 찔러 붉은 태양이 이글거리는 해변을 기다리는 걸까. 모를 일이다. 나무는 철이 들지 않아도 스스로 껍질을 벗고 입는 순리로 살지만, 사람은 자신의 옷을 자신이 벗기도 하고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누군가가 벗기거나 벗길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감상을 한다. 창작 또한 탈(껍질)을 벗는 일이며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일이기는 하다. 세상사 누가 누구를 까닭 없이 탐할 것이며 누가 누구를 이유 없이 범하겠는가. 항시 원인과 결과는 변명으로 대변되지 않는다. 언제나 옳고 그름은 하늘의 입장이다. 이 또한 세상사에서 경쟁하기 위한 오해와 착각이며 자만과 열등일 수 있으며 오만과 편견이자 공격 과 방어며 나아가 술수다. 세상의 부지런한 농부는 해 걸음에 빈 지게로 돌아오지 않으며 현명한 여인은 개천에서 물을 긷지 않는 법이다. 새는 결코 바람 부는 가지에 집을 지을 지언 정 남의 둥지를 찌르지도 않으며 탐하지도 않는다. 구름이 빛을 가려도 그저 불만하지 않고 더 높은 창공을 향하여 끊임없이 날개 짓을 할 뿐이다. 인간의 예술적 감상과 이해도 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남의 작품을 이해하기 이전에 자신의 생활을 먼저 보아야 하며 남의 작품을 평가하기 이전에 자신의 모습을 먼저 땅에 그려봐야 할 일이다. 예술은 인간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의 따뜻한 손을 잡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발이 땅을 딛고 사람의 머리를 하늘에 두는 천리(天理)다. 누워서 만나는 살결보다 서서 만나는 언어가 인간의 진정한 소통이다. 누워서 부르는 노래는 바닥으로 떨어지지만 서서 부르는 노래는 하늘로 떨어진다. 빛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지만 어둠은 반드시 아래에서 그 아래로 떨어진다. 어둠의 빛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늙는 것은 빛에 대한 오로지 신앙인 것이다. 인간은 먼저 자신의 양심에 거울을 비춰야 한다. 어쩌면 모든 예술의 이해와 감상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양심에 매스를 대는 일일 것이다. 그때 비로소 창작의 노래는 다시 인간의 꿈이 된다. 신(神)이 창조한 최고의 예술이 인간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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