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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정신 103

내 몸의 먼지도 털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먼지를 털랴!
리효종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6월 10일

김덕함은 평생 동안 일곱 고을의 원을 지냈다. 그런데도 워낙 청렴하여 양식이 떨어질 때가 많았다. 아내가 식량이 없다고 투덜거리면 그는 늘 웃으면서 말하였다.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면 반드시 살아날 길이 있게 마련이오.”
평생 동안  자기 집을 소유하지 않고 남의 집을 빌려 살았으며, 책상이나 가구에 내려앉은 먼지조차 털지 않았다. 집안 사람들이 청소하려 들면 그는 말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몸의 먼지도 깨끗이 털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물건의 먼지를 털랴!”
광해군 때는 살림이 워낙 쪼들려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보다 못한 어떤 사람이 그를 찾아와 말했다.
“지금 나라에서 전란으로 망가진 궁궐을 보수하고 있소. 지금 거느리고 있는 종을 궁궐을 짓는 공사장에 보내 품삯이라도 받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 무렵 광해군이 궁궐을 보수하였는데 공사의 감독이 매우 어수선하였다. 그리하여 궁궐 공사에 동원된 백성들은 남의 집 담에 있는 벽돌이나 무덤 앞의 축대들을 갖다 바치고 돈을 받기도 하였다. 이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먹을 것이 귀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덕함은 종을 공사에 내보내지 않겠다고 하며 이렇게 말했다.
“남의 집 물건을 도적질하여 나라에 바치고 그 대가를 받아 생활을 도모하는 것은 차마 못할 짓이다.”
이이첨 일파가 인목대비에 대한 폐모론을 주장했을 때, 김덕함은 이에 반대하다가 결국 남해로 귀양을 떠났다. 그가 남해에 도착한지 7일 만에 금부도사가 도착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사약이 내려오리라 생각하고 주위에 장사지낼 준비를 하라 일렀다. 그러고는 하인을 불러 말했다.
“어서 죽을 쑤어 오너라. 떠나더라도 배는 채우고 가야겠다.”
그는 맛있게 죽 한 그릇을 비운 다음, 형에게 보낼 마지막 편지를 썼다. 형에게 하직하는 글을 쓴 후 그는 평소처럼 태연히 잠이 들었다.
이튿날 금부도사가 도착했는데 다행히 사약을 내린 것은 아니었고, 유배지를 옮기라는 명령이었다. 그는 새 유배지로 가기 위해 북청을 지나다가 그곳에 귀양와 있는 이항복을 만났다. 이항복은 조정에 있으면서 늘 김덕함을 아끼고 후원해주었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그때 이항복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죄가 있으니 사약을 내린다면 달게 받겠지만, 죽을 먹으며 금부도사를 기다리지는 못하겠네.”
그는 유배지를 여러 곳으로 옮기며 지내다가 인조반정이 성공한 후 다시 조정으로 돌아왔다.
인조 초기에 그는 승지로 있었다.
어느 날, 임금이 김덕함을 불러 김공량에게 자급(資級)을 주라는 명령을 내렸다. 김공량은 선조의 후궁이었던 인빈 김씨(仁嬪金氏)의 오라버니로, 누이가 선조의 총애를 받자 이를 이용해 세도를 부린 인물이었다.
김덕함은 그런 사람에게 자급을 주라는 어명은 부당하다고 여기고 실행하지 않았다.


김덕함
1562년(명종 17) ~ 1636년(인조 14).
본관은 상주이며 자는 경화(景和). 호는 성옹(醒翁)이다. 1588년(선조 21) 진사가 되고 이듬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연안(延安)에서 초토사 이정암을 도와 의병을 모집하고 군량을 조달했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광해군 때 군기시정에 이르렀으나 이항복과 함께 폐모론을 반대하다 남해에 유배되었다.
이후 명천, 온성, 사천 등지로 유배지를 옮겼다가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대사성·대사간·대사헌을 지냈다. 이때 인조에게 사치를 금하고, 김공량(金公諒)의 신원에 반대하다가 미움을 사기도 했다. 1627년 정묘호란 때는 청나라에 대한 척화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인조 때 청백리로 뽑히고, 저서로 『성옹유고』가 있으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리효종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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