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조류독감(AI), 서해안 기름유출, 오일쇼크, 물가 폭등, 전세 값 폭등, 종부세 완화, 고급수입차 급증, 고급 휘발유 소비 급증, 대운하 논쟁, 사상최악의 소득격차----한동안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대구 초등학교 성폭행 사건. 최근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국내뉴스를 보면 마치 대한민국이 정상이 아니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과연 우리의 아이들이 이 나라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배울 것인가.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가 있는가. 동화 <피노키오>에 나오는 못된 사람들처럼 거짓말을 밥먹듯이 해도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되는 세상, 돈이 최고이며 돈을 벌기 위해서는 유치원에서부터 영어와 한자를 공부해야 하고 초등학교 때에도 밤늦게까지 학원을 다녀야하며 빚을 내서라도 비싼 학원에 등록을 하고 기러기 아빠가 된다 해도 조기유학도 마다 않는 현실이 <피노키오>의 원작동화처럼 희망 없는 사회로 전락해 가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인성교육보다는 특목고나 일류대를 많이 보내는 것으로 학교의 서열이 정해진 우리의 교육현장은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져버렸다. 더 한심한 것은 학생들이 인생 상담조차도 학교 선생님이 아니라 학원선생님과 한다는 신문기사를 접하고는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 책임을 통감할 수밖에 없다. 물론 대한민국의 교육문제는 한 두 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교육이라는 것이 마치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만드는 학원의 기능처럼 동일시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교육현실 속에서 아이들의 적성과 특기와는 상관없이 모두가 특목고를 선호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모들은 수 백 만원의 학원비를 지출해야만 한다는데 비극이 있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인 것 같다. 돈이 없으면 좋은 대학도 갈 수 없다는 현실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뮤지컬 <피노키오(Pinocchio)>는 디즈니가 만든 두 번째 장편 뮤지컬 애니메이션으로 1940년에 개봉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사람이 되고 싶은 인형이 요정의 도움으로 진짜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는 단순히 아이들만을 위한 동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어른들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동화 속 이면에 흐르는 의인화된 상징성이 오늘날 우리의 교육현실을 되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피노키오>의 원작 제목은 <피노키오의 모험>이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작가 콜로디(Collodi, Carlo Lorenzini, 1826~1890)로 1880년부터 1883년까지 이탈리아 <아동신문 Giornale dei bambini〉에 ‘나무인형의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연재된 동화였다. 망나니인 피노키오가 귀뚜라미를 죽이는 장면이라든지 피노키오가 목매달려 죽는 장면 등 원작이 갖는 충격적인 내용은 쉽게 잊혀 지질 않는다. 옳고 그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제대로 된 교육도 거의 받아보지 못한 피노키오가 쉽게 악당들의 꼬임에 넘어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런 피노키오가 어쩌면 오늘날 교육부재속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의 아이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 무섭게만 느껴진다. 피노키오의 원작에선 금화를 가진 피노키오가 악당들을 만나서 금화를 빼앗기게 되고 악당들은 잔인하게도 피노키오를 나무에 목매달아 버린다. 죽음의 기로에서 구원자를 기다리지만 나타나지 않고 목이 매달린 채 숨이 끊어져 가는 다소 엽기적인 내용은 동화로는 정말 충격적이다. 그렇지만 신문을 연재하면서 독자들의 무서운 항의를 받아서인지 동화책이 출간되면서 요정이 첨가되고 해피엔딩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피노키오가 요정의 도움으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연스럽게 세상을 알게 되고 마지막에는 진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의 아이들에게 과연 누가 요정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인가. 건강하게 자라나야 할 우리의 어린아이들이 치명적인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인식되어 온 사실이다. 야동의 예를 들면 인터넷이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초등학교 저학년생도 자연스럽게 음란물을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문제는 야동을 본다는 것이 아니라 야동에 대한 판단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대구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문제도 단순히 음란물을 보고 따라 했다는 것이 아니라 해도 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판단력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 타인들에 대해 아주 버릇없고 배은망덕한 행동을 보였던 피노키오처럼, 더욱이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피노키오처럼, 우리의 아이들도 자신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판단할 수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으며 점차 학원화되어 가는 우리 교육현장의 치명적인 문제점인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쁜 것은 이런 일이 벌어지기까지 아이들을 방치한 해당교사들과 이런 사실을 숨기며 거짓말을 밥먹듯이 해온 학교당국에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피노키오라면 거짓말을 스스럼없이 하면서도 모든 것을 아이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학교당국은 피노키오를 비웃는 동네사람들과 다름 아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