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익 수 (시인)
사람은 나그네(客)다. 사람은 누구나 마당과 무대에서 각기 특수한 조건으로 삶의 이유와 까닭을 놓고 치열한 싸움과 경쟁 속에 살아간다. 객(客)은 마당에 있다. 빛은 그림자를 만들고 구름은 빛을 먹으며 그림자와 함께 지나간다. 생성과 소멸은 현재 같지만 늘 과거다. 살아있는 것은 언제나 과거의 거름을 딛고 산다. 바람을 등에 지고 수레를 밀다가 끌며 살아간다. 인간이 추구하는 오늘과 내일이 행복임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인간이 왜 다투고 경쟁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넘어지며 깨닫는다. 인간의 삶은 장거리 경주다. 길을 다듬고 꺾다가 또 새 길을 내서 줄곧 달려야만 한다. 언덕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 길이 있고 비탈길을 지나 더러는 평탄한 길을 간다. 인간의 길이 어찌 글쓰기의 기승전결로 행진하겠는가! 이 땅의 흙은 벽돌이 되기도 하고 때론 처마 밑 제비집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 인간의 경쟁관계의 최고의 선은 페어플레이(fairplay)를 통한 파트너쉽이며 동반자 관계다. 경쟁과 경기는 다르다. 경쟁은 각기 부여된 다른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동원하여 정정당당히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경기는 제한된 시·공간에서 기술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다. 인간의 관심사에서 무엇은 기쁘고, 무엇은 슬프고, 무엇은 좋고, 무엇은 싫은 건지, 이러한 분별과 차별이 지극한 즐거움을 앗아가는 자아의 무서운 독소임을 여러모로 체험하지만 사람들은 때때로 잊고 산다. 자신에게 말하고 자신에게 들어 보라. 인간의 해답은 그 안에 다 숨어있다. 다만 인간이 지나칠 뿐이다. 세상에는 낮은 것도 없고 높은 것도 없다. 큰 것도 없고 작은 것도 없다. 귀한 것도 없고 천한 것도 없다. 그대로 있는 것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자연을 그대로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자연은 지식을 모른다. 그것을 모르므로 자연은 분별을 모른다. 분별을 모르므로 차별을 모른다. 불행히도 사람의 얄팍한 지식이 차별과 증오와 미움이 전쟁으로 치달아 인간의 비극이 된다. 스스로 즐기고 스스로 노니는 것을 인간이 잊은 지 오래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신을 턱없이 드러내며 사람간에 날마다 싸움을 건다. 경쟁과 경기에서 이겼다고 결코 인간이 행복해 할 수 없다. 인간정치의 근본은 덕이다. 인간의 덕이란 무엇인가. 만물이 오순도순 있게 하는 도(道)의 모습이요, 손길이며 숨결이다. 이러한 모습과 손길과 숨결을 어찌 인간끼리 구속할 수 있겠는가. 천지는 만물의 객사(客舍)와 같다고 했다. 세상은 모두가 왔다가 가는 손님일 뿐이다. 이제는 싸우지 말자. 모든 피곤을 털고 각자 제자리로 돌아가자. 그리고 앞마당 뒷마당을 묵묵히 쓸어야 할 일이다. 그래 시민과 시민이 여러 걸음으로 한곳에 모여 살아야 한다. 내 발바닥의 환한 양심의 힘으로 시민의 눈이 담장을 넘어가게 해야 한다. 힘을 가진 사람이여! 노을 따는 들꽃 살냄새를 붙잡고 시(詩) 한 편 낭송해 보라, 그러면 사람이 보인다. 힘을 가진 사람들은 끼리끼리 권력에 매단 그네만 탈 것이 아니라, 여럿이 손잡고 강강수월래 해야 한다. 사랑의 널뛰기를 해야 한다. 이러한 정신이 인간의 예술이며 진정한 장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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