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초반 할리우드에 등장한 진 켈리(Gene Kelly, 1912~1996)와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1915~1998)는 오늘날 한 사람은 뮤지컬계의 전설로 또 한 사람은 유명한 모던 팝(Modern Pop)의 대중가수로 세계인의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다. 진 켈리와 프랭크 시나트라는 <앵커스 어웨이(Anchors Aweigh, 1945, MGM)>와 <온 더 타운(On the Town, 1949, MGM)> 등 두 작품에 함께 출연했는데 두 작품 모두 1940년대에 뮤지컬의 새바람을 일으킨 작품으로 흥행성과 작품성 모두 인정받았다. 두 사람은 194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의 하나의 축을 이룬 사람들이었지만 시작과 끝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 진 켈리는 할리우드에 정착하기 이전에 이미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한 뮤지컬 스타였다. 노래와 춤 그리고 연기의 삼박자를 갖춘 스타급 연기자로 당시 대부분의 뮤지컬 스타들이 할리우드로 진출했던 것처럼 MGM 스튜디오의 아서 프리드(Arthur Freed)에 의해 할리우드에 스카웃되었다. 다이나믹하고 발레적인 경향의 춤 스타일을 지닌 진 켈리는 댄서로써 상상력이 풍부한 참신함과 강건함을 특기로 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뮤지컬 댄스계의 지존이었던 프레드 아스테어(Fred Astaire)가 탭댄스 스타일과 볼룸 댄스의 대명사였다면 전혀 다른 페르소나를 가진 진 켈리는 이미 하락의 길을 걷고 있던 프레드 아스테어의 후계자로 주목 받으며 첫 작품 <포 미 앤 마이 갈(For Me and My Gal, 1942, MGM)>로 일약 정상에 올랐다. 이후 <커버 걸(Cover Girl, 1944)> <앵커스 어웨이(Anchors Aweigh, 1945, MGM)> <지그펠드 폴리스(Ziegfeld Follies, 1946)> <해적(The Pirate, 1948)> 그리고 <온 더 타운(On The Town, 1949)>에 이르기까지 연기자로 탄탄대로를 걸었으며 뮤지컬 사상 최고의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 1952)>에서는 감독까지 겸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오늘날 진 켈리는 뮤지컬계의 최고의 배우이자 감독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반면에 프랭크 시나트라는 우리에게 가수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다방면에 걸쳐 활동했던 연예인이었다. 처음에 무명가수로 활동하던 중 할리우드에 데뷔했는데 뮤지컬 영화 <앵커스 어웨이(Anchors Aweigh, 1945, MGM)>에서 진 켈리와 공동 주연을 맡게 되어 당시 할리우드에서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연기자로서의 경력이 일천하며 연기력 또한 많이 부족한 시나트라가 어떻게 주인공역에 캐스팅 되었는가에 모든 관심이 모아졌다. 더욱이 마피아들과의 돈독한 친분으로 인해 그 의혹은 더욱 증폭되어졌고 그 상황을 토대로 1972년에는 영화 <대부(God Father)>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앵커스 어웨이(Anchors Aweigh)>이후 시나트라가 출연한 뮤지컬 영화들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영화 <대부>에서처럼 마피아들의 협박과 돈으로 배역을 얻었다는 빈정거림을 받기도 했다. 이에 더욱 가수로써의 활동에 박차를 가한 시나트라는 성공을 거두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이미 빅밴드(Big Band)가 유행했던 스윙시대(Swing Era)에 노래를 시작했던 시나트라는 1940년대 중반에 솔로로 전향하며 재능 있는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지만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한 상태에서 뮤지컬 배우로서도 능력에 의심을 받게 되자 침체된 나날을 보내게 된다. 1949년에 <온 더 타운(On The Town)>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연기력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인지 더 이상 뮤지컬 영화에 출연을 거부하고 드라마 연기에만 집중했다. 설상가상으로 1952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컬럼비아(Columbia Records)"와 ‘MCA’ 레코드 회사로부터 결별 통지를 받기에 이른다. 시나트라에게는 배우와 가수로서의 경력에 최대의 위기를 맞은 해였다. 그렇지만 1953년에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를 통해서 연기력을 인정받고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제2의 연기 인생을 걷게 된다. 이 작품으로 그동안의 연기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모두 잠재운 시나트라는 이후 <아가씨와 건달들(Guys and Dolls, 1955)>과 <80일간의 세계일주(Around the World in 80 Days, 1956)> 등 뮤지컬과 드라마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렇지만 그의 주된 활동영역은 가수였다. 1953년 음반회사 ‘캐피톨 레코드(Capitol Records)’와 새롭게 계약을 맺은 이래 그의 음악 인생도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1969년 발매된 앨범 “마이 웨이(My Way)”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앨범 속 타이틀곡인 폴 앵카(Paul Anka) 작곡의 “마이웨이”는 프랭크 시나트라를 세계적인 가수로 만들어주었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전 세계적으로 2억 5천만장 이상의 레코드를 판매한 가수이며 최초의 모던 팝 슈퍼스타로 평가된다. 진 켈리가 뮤지컬의 전설인 것처럼 프랭크 시나트라는 대중음악의 전설적인 솔로 아티스트로의 길을 걸은 가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