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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비정신 101

젊은 아이들이 나를 꼭‘여헌’이라 부릅디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5월 20일

한국한시협회 포천지회장  리 효 종
장현광만큼 임금의 간절한 부름을 받고, 또 이를 거듭 사양한 이는 드물다. 그는 23세 때인 1576년(선조 9)에 재능과 행실이 드러나 조정에 천거되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잠시 보은현감에 임명되어 부득이 부임하였으나 관찰사에게 세 번씩이나 사직을 청하였고, 이를 허락하지 않자 다시 세 번 사직을 청한 뒤 곧바로 향리로 돌아갔다가 직무유기 혐의로 의금부에 잡혀갔을 정도였다.
조정에서 수십 차례나 그를 불렀으나 공조좌랑과 형조좌랑에 잠시 몸담았다가 사직하고, 다시 의성현령에 부임하였으나 몇 달 만에 돌아왔다. 인조반정 후에도 수십 차례에 걸쳐 임금의 극진한 부름을 받았으나 마지못해 사헌부 장령과 호조참판으로 잠시 부임하여 임금께 감사의 예를 올린 후 돌아왔을 뿐 의정부 우참찬의 벼슬도 거절하였다.
장현광이 벼슬을 사양하며 경상도 구미 인근에 살 무렵이었다. 어느 날, 그는 농부의 옷을 입고 마당에서 보리타작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자 그는 마당에 널어 두었던 보리를 마루 위로 거둬들였다. 그때 그의 나이가 많았으므로 얼굴은 농부처럼 검고 차림새는 매우 지저분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보면 꼭 촌스런 늙은이 같았다.
때마침 경상도 감사의 아들이 그 고을에 놀러왔다가 비를 피하여 장현광의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감사의 아들은 제 집을 찾아들듯 스스럼없이 마당 안으로 들어서서는 성큼 마루 한가운데로 들어와 앉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집주인에게 인사 한마디 없었다.
감사의 아들은 마루에 널린 보리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장현광에게 물었다.
“타작한 보리가 적지 않은데, 자네는 농사지은 곡식을 찧어서 먹고사는가?”
 장현광은 돌연 웃음이 나왔으나 꾹 참고 대꾸하였다.
“힘껏 농사를 지으면 간신히 굶주림은 면할 수 있지요.”
감사의 아들은 문득 장현광의 허리춤을 바라보았다. 그의 허리에는 금으로 만든 작은 술잔이 매달려 있었다. 감사의 아들이 의아하게 여기며 다시 물었다.
 “그 물건은 벼슬아치들이 갖고 다니는 물건인데, 자네는 곡식을 뇌물로 바치고 말단관리를 지낸 모양이군.”
이번에도 장현광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공손히 대답했다.
“요즘 뇌물을 바치면 벼슬을 올려주는 일이 많아 시골 사람들도 벼슬을 얻을 수 있지요.”
“자네, 아들은 있는가?”
“양아들이 있습니다.”
“집에서 같이 농사를 짓는가?”
“일이 있어 지금 도성에 가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는가?”
“지금 부제학으로 있지요.”
당시 장현광의 아들 장응일은 부제학이었다. 감사의 아들은 깜짝 놀라며 다시 물었다.
“이 마을에 여헌 장현광 선생이 사신다는데 혹시 아는가?”
“이웃에 사는 젊은 아이들이 버릇이 없어서 나를 부를 때 꼭 여헌이라고 부릅디다.”
감사의 아들은 이 말을 듣고 급히 마당으로 내려가 엎드리며 말했다.
“제가 어리석고 아둔하여 선생께 큰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장현광은 그를 마루 위로 올라오게 하고는 점잖게 꾸짖었다.
“선비는 말을 삼가지 않을 수 없는 거라네. 앞으로 조심하게.”
그뒤 감사가 아들을 데리고 와서 자식을 가르치지 못한 것을 사죄하였다고 한다.


 장현광(張顯光)
 1554년(명종 9) ~ 1637년(인조 15).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자는 덕회(德晦). 호는 여헌(旅軒)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정진하여 23세 때인 1576년(선조 9) 조정에 천거되었다.   이후 선조는 그에게 수십 차례나 벼슬을 내렸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597년 여러 차례 그를 조정에 천거했던 유성룡이 그의 학식에 감복하여 자기 아들을 그 문하에 보내 배우게 하였다.
 인조 때도 수십 차례 부름을 받았으나 대부분 사은(謝恩)만 하고 돌아오거나 아예 부임하지 않았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三田渡)에서 임금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동해 입암산에 들어가 은거하다가 반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주역도설(周易圖說)』. 『경위설(經緯說)』 등의 저서가 있으며, 시호는 문강이다.
그의 양자인 장응일(張應一)은 숙종 때 부제학과 대사간을 지내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장응일이 부제학을 지낼 때는 이미 아버지 장현광이 사망했으므로 위의 이야기에 다소 과장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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